My travel abroad./Peru(2014 Dec)

페루(Peru)는 살아있다

봉들레르 2014. 10. 9. 17:34

 

수도 리마( Lima)

 

페루의 수도인 이곳은 페루 상업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역사적 흔적을 껴안은 문화 중심지이다.

1535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건설된 이곳은 그 이전부터 원주민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당시 원주민이 살았던 흙벽돌로 지은 `와카`를 찾아볼 수 있다.

풍부한 문화유적을 품은 리마.

그중에서도 리마 국립인류고고학박물관은 차빈문명부터 잉카문명까지 이르는 출토품을 간직한 곳으로 페루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소장품 수만 약 10만점에 이른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는 호세 데 산 마르틴의 집이었다.

마르틴이 이곳을 떠난 뒤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른다.

리마 옛 시가지에는 산마르틴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리마의 중심가로 광장 주변으로 다양한 건축물을 살펴볼 수 있다.

옛 시가지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페루 대통령 궁도 볼거리 중 하나다.

스페인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의 외관은 잉카식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리마시청, 산 프란시스코 바로크 교회, 토레 타글레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을 둘러볼 수 있다.

 

 

 

 

 

이키토스(Iquitos)

국토의 60% 이상이 열대우림으로 둘러싸인 나라 페루 우리는 페루 아마존의 시작점이자 아마존 여행의 관문도시 이키토스.

육로로는 갈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이키토스 아마존의 정글 도시답게

신기하고 특이한 매력으로 여행자를 사로잡는 이곳 이키토스의 명물, 벨렌시장에선 아마존 강에서 막 잡아온

특이한 물고기가 오고 가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원숭이부터 나무늘보, 타피르, 아나콘다 등이 야생의 기운을 뿜어낸다.

또 원시의 자연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구아족도 만날 수 있다.

 

아마존강                                                                                    이키토스 시내

 

아마존 원주민

10m가 넘는 비단 아나콘다.

 분홍 돌고래 보뚜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어’, ‘아마존 강의 왕’, ‘살아있는 화석’.이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바로 아마존 강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파이체’.

‘피라루크’, ‘아라파이마’라고도 불리는 파이체는 몸길이가 보통 2.5m, 몸무게는 100kg.

간혹 길이 5m, 몸무게 200kg짜리가 잡히기도 한다.수세기 동안 아마존 강 원주민들의 식량이었던 파이체.

하지만 아마존 지역에 그물이 도입되고 인근 도시들이 개발되면서 개체수가 급감,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다.

 

쿠스코(Cuzco)

 잉카 문명 하면 보통 ‘고대 문명’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13세기에 시작하여 15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이룬 제국이다.

비록 철기 문명은 없었으나 고도로 발달한 역법과 석조기술, 은 채광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쿠스코가 점령한 것이 1532년이니

그 전성기가 극히 짧았으며 고대문명이란 생각과는 달리 중세의 끝자락에 위치했던 비교적 최근의 문명이라 할 수 있다.

잉카인들은 이곳을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배꼽이라는 뜻으로 쿠스코라 불렀다.

붉은 지붕으로 빼곡히 채워진 쿠스코(Cuzco). 마치 유럽의 한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잉카와 스페인식 건물의 조합이 역사 속 신비로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행자들은 말한다.

쿠스코는 지구상에 있는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쿠스코는 코가 가장 먼저 알아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수제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빵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어서다.
쿠스코 주 광장은 낮에는 `태양의 도시`라는 면모를 드러내며 환하게 빛나고,

밤에는 화려했던 옷을 벗어던지고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노란색 가스등이 수놓은 도시는 `파리`만큼이나 청춘의 낭만에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태양의 도시 쿠스코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다시 시작하는 청춘의 햇살만큼 뜨겁다.

 

쿠스코 야경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지닌 삭사이와만(Sacsayhuaman)

푸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삭사이와만은 유판키 왕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하루 2 만여명의 인원을 동원한 끝에 83년에 걸쳐 완성한 거대한 요새로,

당시 주요 농작물이던 감자, 옥수수의 재배나 수확시기를 가늠하기 위해 정상에는 거대한 해시계를 설치했다.

삭사이와만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6월 24일이면 인티라이미(IntiRaymi)라는 태양제가 열리고 있다.

삭사이와만의 유적은 거석을 3층으로 쌓아올려서 만들었는데,

석조 기술은 잉카의 석조처럼 빈틈없으며 특히 절벽쪽(시가지쪽)은 높이 5m, 360t이나 되는 거석을 사용하고 있다.

땀보마차이

잉카인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샘이었던 땀보마차이. 이 샘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절대로 마르지 않으며,

잉카인들에게 이 물은 성스러워 마시면 젊음을 되찾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 물로 쿠스코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겐코(Kenko)는 케츄아어로 "지그재그", 즉 미로란 뜻.

잉카제국의 제례장으로 추정되는 겐코는 퓨마 형상을 한 바위돌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푸카푸카라(PUKA PUKARA)

쿠스코의 북쪽을 지키기 위하여 세워진 요새이다. “푸카”란 케츄아어로 빨강이란 뜻인데 현재 돌에는 약간의 빨간색이 남아 있다.

삭사이후아만 요새에서 도보로 45분-1시간 거리이며 왼편에 있다.

마추피추

모라이(Moray)

모라이는 잉카시대의 농업연구소로 원 모양으로 이뤄진 계단식 밭이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닮은 12층의 계단식 경작지.

층과 층 사이는 4개의 돌출된 돌 받침을 세워놓아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눈 녹은 물을 지하로 끌어들인 뒤 작은 홈통 모양의 수로로 연결해 경작지에 물을 댈 수 있게 했다.

마라스(Maras) 마을 계곡 속에 위치한 살리나스(Salinas)염전

산기슭에서 솟아나오는 소금물을 받아서 태양열로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곳이다.

잉카 시절부터 소규모로 소금을 만들어왔는데 스페인 식민지 시절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소금 산지로 유명해졌다.

하얀 소금은 사람이 먹고, 흙이 묻어 누런 소금은 동물에게 먹인다고 한다.

거름으로 사용하는 소금도 있다.

마라스의 소금은 너무나 유명해 “마라스에서 왔다(Seras de Maras)”는 말은 “음식이 짜다”는 것을 뜻하는 관용구라고 한다. 

구시가지 남서쪽에 자리잡은 커다란 재래시장, 산페드로 시장(Mercado San Pedro)

잉카와 스페인의 건축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토도밍고 성당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의 내부는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제단의 상당 부분은 실제 금으로 칠해져 있으며, 삼면의 벽이 입체적인 부조로 틈도 없이 채워져 있었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천장의 벽화는 자연스레 바티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르밤바(Urubamba)

 안데스 산맥 골짜기에 있는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은 케추아어로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뜻이다.

골짜기로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잉카의 유적들과 인디오 촌락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곳이 우르밤바

 

 

아레키파(Arequipa)

페루의 제 2의 도시라 불러지는 아레키파! 꼴까캐년을 가기 위해서는 꼭! 들려야하는 도시이다.
해발 2,400m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5,000m가 넘는 활화산이 2개가 있다.
오래전 화산 폭발로 피해를 입었지만, 그 화산재로 건설된 도시라 모든 건축이 회색으로 이루어져
회색 도시라고도 불리우며 페루에서 가장 이쁘다는 아레키파!
게다가, 1540년 침략자인 피자로가 요새로 활용하고자 세워진 식민지 도시라 스페인 건축 양식인
바로크형의 건축물이 즐비해 이또한 즐거움이다

 

 

 

 

꼴까 계곡

꼴까 계곡(Colca Canyon)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 꼴까 캐년은 트레킹이 힘들지만 참 아름다운 곳,

꼴까 계곡은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곳곳에 전설과 이곳 특유의 동식물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거대한 벌새들, 잉카인 들의 하늘과 평화의 상징인 거대한 콘돌의
우아한 비행을 페루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다.

 

치바이(chivay) 마을

야외 유황 온천장을 즐길 수 있는 치바이 마을! 온천장에 들어가면서 가득한 유황냄새가 치명적이다

 

 

 

파라카스(Paracas)

사람들이 보통 찾아가는 행선지로는 리마,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 장관을 이루는 마추픽추의 유적지, 웅장한 안데스 산맥이 있으며,

어쩌면 아마존 강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가 하나 더 생겼는데,

그곳은 파라카스 국립 보호 구역이다.

남북아메리카를 이어주는 도로인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를 타고 갈 경우, 이곳은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파라카스 국립 보호 구역은 약 33만 5000헥타르에 이르는 해안 지대와 파라카스 반도를 차지하고 있다.

1975년에 페루 정부는 이 지역에 영구적으로 서식하거나 매년 얼마 동안 머물다 가는

많은 야생 생물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보호 구역을 지정하였다.

이 보호 구역은 환경에 대한 존중심을 증진시키는 한편 관광업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100군데가 넘는 고고학 유적지가 발굴되어,

먼 옛날 여러 세기 동안 존재했던 파라카스 문화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곳의 해안 지역은 바다사자, 남방바다수달, 돌고래, 200종이 넘는 조류, 4종의 바다거북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다.

지도에서 보면, 파라카스 반도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광대한 대륙에 달아 놓은 작은 단추 같아 보인다.

그와 같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이 지역에는 그 지방 사람들이 파라카스라고 부르는 세찬 무역풍이 거세게 분다.

이 바람은 북쪽으로 몰아치면서 차가운 페루 해류 즉 훔볼트 해류를 밀어 올린다.

찬 바닷물과 얕은 해안 그리고 바다 깊은 곳의 차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닷물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용승(湧昇) 현상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 반도는 세계에서도 해양 야생 생물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을 둘러싼 태평양은 식물 플랑크톤과 동물 플랑크톤 등 미생물이 풍부해 녹색을 띠고 있으며,

그와 같은 미생물은 영양분이 풍부한 이 수역에 떼지어 살고 있는 수많은 페루멸치들과 기타 작은 물고기들에게 먹이 역할을 한다.

한편 그러한 작은 물고기들, 특히 페루멸치들은, 보호 구역 내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많은 바닷새와 펭귄과 바다 포유류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바다의 진수성찬이 된다.


바예스타스(Ballestas) 섬 여행


파라카스 만의 부두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수많은 작은 고깃배들이 닻을 내린 채 출렁이는 물결에 위아래로 흔들린다.

배들에 탄 승객이라곤 그 지역에 서식하는 사다새뿐인데, 부리로 깃털을 고르며 주위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쾌속정이 도착하자, 기대에 가득 찬 여행객들은 배에 올라타 구명조끼를 입는다.

일단 혼잡한 부두를 벗어나 배는 속도를 내면서 파라카스 만의 완만한 물결을 가로지르며 미끄러지듯 상쾌하게 나아간다.

파라카스 반도의 거의 끝 부분에서 처음으로 멈추어 서면 그곳에서 안내인은 언덕 경사면에 있는 거대한 그림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그림을 칸델라브라 즉 ‘가지가 달린 촛대’라고 부르긴 하지만 이것이 줄기가 세 개인 선인장을 닮았다

이 그림이 유명한 나스카 지상화의 일부라고 추측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 그림이 해적들의 작품이라거나 혁명 지도자인 호세 데 산마르틴을 따르던 군인들이

1820년에 만든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다. 누가 만든 것이든, 사막의 이 미술 작품은 매우 인상적인 모습이다

파라카스 반도를 지나자 물살이 점점 거세지면 아침 햇살에 섬들이 하얗게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위와 모래 때문이 아니라 섬들을 덮고 있는 바닷새의 배설물인 구아노 때문이다.

 ‘큰 활’을 뜻하는 바예스타스 섬 이름은 스페인 사람들이 그 섬에 있는 활처럼 생긴 천연의 아치들을 보고 지은 것이다.

 사다새, 제비갈매기, 갈매기, 가다랭이잡이, 여러 종의 가마우지에서부터 훔볼트펭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바닷새들이 바위와 섬 꼭대기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열대 지방에서 펭귄을 본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펭귄들은 물이 매우 차갑고 물고기가 풍부한 이곳에서 아주 편안히 살아간다.

 

섬들은 대부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층으로 되어 있는데,

육지에서는 매우 어설프게 움직이는 펭귄과 바다사자가 어렵사리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사자 수컷은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는 경우도 있고, 많게는 암컷을 20마리나 거느린다.

암컷은 바다사자 특유의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있는 반면, 몸집이 엄청난 수컷은 기름이 가득 차 불룩해진 자루 같아 보인다.

우리는 바다사자 수컷들이 암컷 무리에 대한 통제권과 영역을 놓고 서로 싸움을 벌이는,

힘세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포유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싸움에서 지는 쪽은 대개 치명상을 입게 되기 때문에,

이곳 해안 지대의 먹이 사슬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애기콘도르와 큰콘도르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바다사자는 식욕이 매우 왕성하며, 단 한 차례의 저녁 식사로 흔히 10킬로그램가량의 물고기를 먹어 치운다.

이 바다사자들은 우리에게는 공격적이 아니며, 단지 호기심이 매우 많을 뿐입이다.

 

조종사가 배를 몰고 세 개의 섬과 돌로 된 아치들 주위를 하나씩 천천히 도는 동안, 우리는 강한 구아노 냄새가 온통 진동한다.

“아치 안에는 바다사자가 잠을 자는 동안 그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들이 살고 있다.”

세 개의 섬들 중 저 멀리 가장 큰 섬에 커다란 검은 점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은 모여 있기 좋아하는 과나예스 즉 가마우지 떼로서,

 이들은 빽빽이 모여 무리를 지은 채, 휴식을 취하며 구아노를 배설한다.

가다랭이잡이들은 바다를 향해 내리꽂듯 다이빙을 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새들은 우리의 눈높이에서 활강하며 지나간다.

바예스타스 섬에서 ‘산부인과 병동’ 역할을 하는 가장 넓은 해변에 도착하면.

많은 바다사자들과 함께, 암컷 주위에서 몸을 꿈틀대고 있는 진한 색의 바다사자 새끼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해변은 울부짖는 소리, 목구멍에서 내는 거친 소리, 고음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떠들썩하다.

새끼들은 길게는 6개월 동안 젖을 먹으며, 어미의 등에 탄 채 수영하는 법을 배운다고.

바다사자 새끼의 60퍼센트는 한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고 일부 새끼들은 압사당하거나 수컷들에 의해 고의로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물에 빠져 죽는 새끼들도 있고. 엘니뇨 기상 현상도 큰 해를 줄 수 있는데,

그로 인해 페루멸치들이 어쩔 수 없이 수온이 더 낮은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다사자 새끼들은 성숙한 바다사자들을 따라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할 만한 힘이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 사는 야생 생물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존재는 인간일지도 모릅다.

많은 수의 바다사자들이 모피를 얻으려는 사냥꾼들과 바다사자를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어민들에 의해 도살되어 왔다.

바다거북은 진미로 여겨지는 고기와 수집가들이 탐내는 등딱지 때문에 포획되어 왔다.

새들의 생활은 구아노를 채집하는 사람들의 침해를 받아 왔고 물고기 남획으로 인해 야생 생물의 먹이가 고갈되어 왔다.

 

 

파라카스의 과거로 떠나는 여행 

 

 

  

 

 1925년에 페루의 고고학자인 훌리오 C. 테요(Julio C. Tello)와 그의 한 동료는 파라카스 반도에서 그들의 첫 번째 발견을 하였다.

그들은 그 지역에 ‘긴 머리’를 뜻하는 롱헤드(Long Head)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황량한 땅의 표면에서 길이를 늘인 인간 두개골들이 반쯤 묻힌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파라카스 문화가 남긴 유물인데, 학자들은 파라카스 문화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존재했다고 추산한다.

파라카스인들은 문자 언어가 없어서 그들이 두개골의 길이를 늘인 방법—완충물, 나무 막대기, 끈을 사용하였음—은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이 동일한 지역에서 테요가 다음으로 발견한 것은, 뒤집어 놓은 술잔처럼 생긴 매장용 지하 동굴들이다.

그 안에는 천으로 감겨 있는 시체들이 태아같이 웅크린 자세를 취한 채 나란히 매장되어 있었는데,

다음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에 대비하여 그러한 자세로 매장되었던 것이다.

동굴들에서는 옥수수, 땅콩, 고구마와 악기 및 의식용 기구들도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테요와 그의 또 다른 동료는 거대한 매장지를 발견했고, 그곳에 파라카스 공동묘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안에는 꾸러미처럼 천으로 싸서 매장한 시체 429구가 있었는데, 그중 일부의 크기는 1.6미터가 넘었다.

각각의 미라들은 웅크린 자세를 한 채 광주리 안에 놓여 있었다.

이 미라들은 여러 색의 자수 문양이 있는 놀랄 만큼 화려하고 호화로운 천으로 감싸여 있었는데,

그러한 문양은 대개 마술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훌리오 C. 테요 박물관에 가면 그러한 매장용 천의 견본들과 그 외에도 파라카스 문화가 남긴 많은 매혹적인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이카(Ica)

안데스의 나라 페루에서 경험하게 되는 뜻밖의 풍경이 페루의 중남부도시 이카에서 만나는 와카치나 사막이다.

페루 이카 주의 주도인 이카는 안데스 산맥 기슭의 낮은 구릉을 동쪽 경계로 하는 광활한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리마에서 남쪽으로 버스를 이용해서 약 4시간 가량 걸리는 곳에 있다.

도시의 역사는,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페루 부왕의 명령으로 1563년에 설립된 도시였던 콘테데니에바가

1569년 발생한 지진으로 대부분이 파괴된 뒤 지금의 이카가 위치한 곳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이카는 식민지시대 이후 오랫동안 목화와 포도를 재배하며 가공하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이카에는 지프를 개조해서 만든 차로 사막을 달리는 부기투어로 유명한 와카치나 사막이 있다.

시내에서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카 도심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이카 중심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걸려서 사막의 오아시스인 와카치나 마을에 갈 수 있다.

페루의 황량한 서부해안을 달리다가 만나는 와카치나 사막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바닷가의 황량한 건조지대를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을 만나는 것 같은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카 시내를 뒤로하고 작은 능선을 넘으면 아름다운 오아시스와 함께 광활한 모래사막을 만나게 된다.

능선을 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신비한 사막의 모래언덕과 신기루와 같은 장관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와카치나 사막은 규모는 작지만 아프리카의 사하라나 몽골의 고비사막과 같은 대규모 사막과는 또 다른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다.

고운 모래와 그림 같은 오아시스 등 사막의 모든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주변이 황량하지 않은 따뜻함이 있다.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사막과 적당한 크기의 단정한 오아시스의 마을이 잘 짜인 영화의 세트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와카치나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서는 부기투어와 샌드보딩 등 사막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숙박까지 가능하다.

사막 위의 질주라고 불리는 모래언덕의 부기투어와 샌드보딩은 잉카의 땅에서 체험하는 새로운 모험이며

거친 사막의 낭만이 함께하는 스릴만점의 레포츠이다.

부기투어는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사막전용차를 타고 최고속도를 내고 달리게 되는데 거의 무중력상태에 까지 도달하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샌드보딩은 스노보드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판자 위에 엎드려서 타는데 스키장에서의 스노보드 정도만큼이나 잘 미끄러진다.

 

모래언덕을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들은 그 짜릿함에 놀라고 취해서

샌드보드를 메고 다시 모래 고지를 향해 오르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가르고 사막을 질주하며 모래언덕의 경사를 빠르게 내려오는 쾌감을 맛보는

이카의 샌드보딩은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레포츠이다.

잉카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문명의 땅 페루에서 한적한 사막 위의 작은 오아시스 너머로

이처럼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사막의 모래언덕을 타는 샌드보딩은 사하라 사막이나 호주의 사막 등에서도 경험 할 수 있지만

와카치나 사막의 부기투어와 샌드보딩은 이와는 좀 다르다.

뜨거운 사막의 부기투어를 끝내고 오아시스로 돌아와 샤워 후에 먹는 피스코사워는 정말 맛있다.

페루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을 때 스페인 사람들이 페루 사람들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을 알려줬는데

페루 사람들이 포도주와는 별개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만든 새로운 음료수가 피스코사워라고 한다.

피스코사워 외에도 꾸스께니아 맥주도 많이 마시는데 이왕이면 달콤하면서 쌉쌀한 맛이 일품인 꾸스께니아 흑맥주를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수입을 하고 있어서 대형마켓에서도 간혹 이 쿠스케니아 맥주를 만날 수 있다.

와카치나의 사막 오아시스는 관광객들을 많이 상대하는 곳이라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미리 이카에서 마실 음료수와 간식 등 필요한 물품은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와카치나 사막투어와 함께 이카에서는 고고학박물관과 유명한 포도농장을 관광할 수 있다.

이카 시내에는 아르마스 광장에 대성당 라 메르세를 비롯한 식민지 시대의 거리 모습이 아직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승용차로 10여분 정도 걸리는 곳에 고대 뇌수술 흔적으로 유명한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고대 나스카 문명(BC 200경~AD 600)시대의 유물인 암석조각과 항아리, 그리고 미라가 소장되어 있다.

10여 구에 이르는 미라는 고대 파라카스, 나스카, 와리 문명 시대의 두개골 5000여 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두개골은 모두 변형되어 있어서 당시 뇌에 대한 외과 수술이 시술된 흔적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카는 스페인식민지 시기에 널리 퍼진 페루 특산물인 피스코 라는 무색의 포도주 생산지로도 유명한 도시이고

도시의 이름 역시 이 도시를 흐르는 '이카'라는 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카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농장을 방문하면 수 백년이 넘은 포도나무를 볼 수 있으며

농장과 같이 있는 와인 양조장에서는 옛날 포도주 생산시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포도주를 담아 숙성하던 토기로 만든 항아리들을 볼 수 있으면 옆 카페에서는 농장에서 생산된 와인을 마셔볼 수도 있다.

이카는 페루 중남부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로 알려져 있어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리마에서 쿠스코와 마추피추를 관광하러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도시 이카에는

사막의 샌드보드를 타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젊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향하는 여행자들 중에서 일정이 짧은 사람들은 주로 리마에서 쿠스코로 바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이어서 버스로 거의 24시간 이상이 걸린다.

또 고산병에 대비하여 고산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므로 가능하면

중간에 있는 도시인 이카와 나스카에 들러 쉬었다 가는 것도 고산병에 대응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나스카(Nasca)

 

 

 

 


나스카 라인은 총넓이 450㎢ 광활한 황무지로 최대길이 8km의 어지럽게 새겨진 선과 문양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나스카 라인은 800개의 선과 70개의 동식물 문양, 300개의 기하학 문양은 1,500년 전

누군가가 땅에 그려놓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보는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또 나스카 라인은 1,500년 전 누군가 검은 산화철 돌을 양쪽으로 옮기고 그 사이에 땅을 파내어 깊이 30cm 너비 40cm의 길을 냈다.

그 길은 검은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길이의 선들로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과 도형들이 됐다.

특히 이 지역은 1,500년 기간 동안 비바람이 오지 않으며 그 상태로 기하학적 문양과 도형들이 보존했다.

이에 나스카 라인은 그 당시 누가, 어떻게, 왜 이것을 그렸는지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고대 미스터리로 남았다.

 

'페루의 영웅-한국인 박만복'

한국에서 젊은 지도자로 촉망 받던 박만복 감독은

1974년 페루에서 여자 배구 감독을 1년만 맡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의해 한국을 떠나 페루로 갔다.

처음 박 감독이 페루에 도착했을 때 명색이 국가 대표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보잘 것 없었고,

다른 나라에 비해 스포츠 국가 대표팀에 대한 재정 지원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만복이 페루 배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지 몇 해 후에 페루는 어느새

남미는 물론 세계 정상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박 감독은 페루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도 '페루의 배구 붐을 일으킨 선구자'라고 소개돼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5FNqySKsw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