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taly(2014.Feb)

[황청호 칼럼] 한민족의 혼이 서린 물의 도시 베네치아-기하적측면

봉들레르 2014. 8. 1. 10:55

 

 

▲ 종탑에서 내려다본 산 마르코 광장

 

[한국인권신문=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장 황청호]
 
천부니즘의 기하학을 왜곡한 기독교 황제의 절대적 신관(神觀)앞에 직면한 베네치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마르코광장(Piazza di San Marco)의 카페 플로리안에 않아

과거 바이런, 괴테, 바그너, 미켈란젤로, 카사노바 등의 유명인들이 즐겨 마셨다는 카푸치노를 마셔본다.

그러면서 산마르코광장을 바라보면서, 이들의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낸다.

베네치아에서 둘러본 산마르코대성당, 두칼레궁전, 탄식의 다리, 그리고 먼저 보았던 로마의 수많은 성당,

이 모두가 주마등처럼 역사의 한 장면으로 함께 떠오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중세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화려한 건축물들을 만들어낸 로마문명의 위대함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훈족의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 두 제국의 문명을 다시금 떠올린다. 

 

▲ 산마르코광장(Piazza di San Marco)의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

 

 

로마문명의 문명이란 당초 시민의 문명으로 공화정체제로서 신(神)을 배제한 철저한 인간의 문명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리스·초기 로마의 헬레니즘의 문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앞에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I, 재위 306∼337)가 나타난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고,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최초로 공인한 바로 그 황제이다.

우리는 지금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제조명해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로마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21세기 문명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산마르코광장(Piazza di San Marco)의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는 왜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것일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을 재통일한 후 강력한 황제의 권한을 갖기 위해 지상신(地上神)과도 같은 자신의 권력을 꿈꾼다.

그러면서 그는 지상의 현세뿐만 아니라 사후의 내세에서까지 강력한 왕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 앞에 내세의 진정한 왕국을 부르짖는 그리스도교가 등장한다. 그는 바로 이 그리스도교를 이용한다.

즉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한 것이다. 바로 정종야합(政宗野合)의 정치권력과 종교가 힘을 합쳐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정종야합의 종교는 로마의 힘을 빌려 전 유럽과 전 세계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결국 아메리카로 밀려들어 가 2억 명에 달하는 인디언을 살해하며 참혹한 피에 제국을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권력을 탐하는 정치권력과 종교의 힘이 야합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로마는 결국 멸망하고,

그리스도교는 바티칸의 화려한 역사만을 간직한 채 지금처럼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의 문명의 어떻게 변색되는지를 그들이 축성한 교회를 통해 살펴보고,

그리고 훈족의 영향을 받은 베네치아인들이 어떻게 이에 대응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는 ‘새로운 로마’를 외치며 교회를 건립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가히 기독교적 ‘판테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교회의 높이를 하늘의 경계에 닿도록 지었으며,

다른 건축물들 가운데 우뚝 솟아, 마치 위에서 나머지 모든 도시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장식하도록 건설한다.

그리고 교회 안은 햇빛과 햇빛을 반사한 대리석의 빛이 가득 차도록 하여, 그 빛이 바깥으로 흘러넘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건물 중심부는 대칭적으로 배열된 거대한 벽기둥을 거느리도록 하고,

 그 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돔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마치 그것을 보면 자신들이 창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일어나도록 지어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황제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상징적으로 들어간 건축물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건축물에 사용하는 기하학과 수리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어떤 건축물도 기하학과 수리학이 없으면, 바로 세워질 수 없다.

그래서 기하학과 수리학을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신성한 거룩함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는 새로운 로마 건설을 위해 궁전과 교회에

이러한 기하학과 수리학의 개념을 절대 권력의 차원으로 정립해 나간다.

먼저 숫자이다. 로마는 절대 권력의 일인자로 숫자 1을 선택한다.

이 숫자 1은 숫자 ‘하나’ 자체로부터 전개되는 존재라는, 그 하나라는 한정성의 감소와 함께 무한정성의 증가를 상징한다.

즉 숫자 1로부터 2가 생기고, 다시 1과 2가 3을 산출한다. 이때 1은 한정의 원리이고 2는 무한정성이며,

3은 ‘한정된 여럿’으로서 첫 번째 수(數)로 간주된다. 기하학에서도 한정의 원리인 점으로부터 무한정한 선이 나오고,

이러한 선의 한정을 통해 이차원, 삼차원의 기학적인 도형들이 나온다.
 
이 기하학적 도형의 계열은 바로 원에서 시작한다. 원은 하나의 선이지만 자기 회귀를 통해 자신을 한정 짓는 선이다.

이어서 두 선으로 이루어진 반원과 세 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네 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을 만든다.

이처럼 기하학적인 도형들은 곡선, 직선, 복합선으로 구성된다.

기하학에 있어서 직선은 한정되지 않고 계속 뻗어 나가는 개방성이 있지만,

곡선은 한정돼 있다는 이유로 곡선을 직선보다 우위에 놓는다.

 따라서 완전히 한정되어 있는 단일 곡선인 원이 최상의 도형이라는 것이다. 
 

▲ 성당 내부에서 올려다 본 돔의 모습

 

 

유럽의 모든 교회건축물들의 중심부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황금 돔의 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원은 반원 모양의 아치 4개로 지탱되는데, 바로 원과 4개의 반원이 만나면서 4개의 삼각형 모양 펜던티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또다시 4개의 반원과 삼각형은 아래의 사각형으로 이어져 4개의 기둥 벽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중심, 원, 반원, 삼각형, 사각형의 계열을 삼차원적으로 표현해낸다.

유럽교회의 건축물들은 이처럼 만물의 생성 원리를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문제는 로마문명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궁전과 교회들의 건축법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인간을 신성시하는 축성법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훈족의 천부니즘(Cheonbunism)의 건축법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훈족의 건축법은 건축물의 중심으로 원, 반원,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인 도형을 사용하여 모두 개방형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오픈 문화이다. 그러나 로마의 건축법은 황제와 교황의 절대적인 권력을 신성시하는 폐쇄적인 건축법이라는 것이다.

즉 교회 안에 모든 것을 잡아넣은 것이다. 건축법에 사용되는 원(◯)은 하늘을 나타내며, 사각형(□)은 땅을 나타내고,

그리고 삼각형(△)은 사람을 나타낸다. 그런데 로마의 건축법은 이 모든 천지인의 역사를 모두 교회와 궁전이라는 제한된 틀에 잡아넣어,

그 절대적인 권력자의 권력을 누리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문명의 모든 건축법은 천지인의 원리를 모두 개방형으로 지어 함께 살아나가는 문명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권력을 위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여 인류문명을 더럽힌 황제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교묘히 이용해 전 인류문명의 역사를 더럽히며, 로마가 결국 멸망으로 이르도록 한 자이다.

우리들은 이미 베네치아가 어떻게 물의 도시를 건설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베네치아(Venezia, Venice)는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헬레니즘 문화와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헤브라이즘과 격렬하게 부딪치며 르네상스 문명이 발생한 곳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문화부흥의 운동에는 철저히 훈족이 전한 천부니즘(Cheonbunism)이 숨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