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茶馬古道 (2014 May)

4-3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흑룡담공원

봉들레르 2014. 5. 25. 09:27

 

 

 

 

 

 

 

 

 

 

 

 

동파문자로 소망을 적었다.

물레방아 뒤로는 장쩌민 전 주석이 세운 기념비가 있다.

모계사회답게 물레방아의 큰쪽이 여자 작은쪽이 남자를 상징한다

 

 

 

 

 

 

 

                                       

 

 

 

여강시의 북쪽 끝에 있는 공원으로 나시족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옥수채에서 흘러나온 물이 호수를 이룬단다. 호수에 옥룡설산이 비치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공원에는 명나라때 만들어진 오봉루, 해탈림, 득월루등이 있다.

고대 나시족 건축물이 있으며 나시족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동파 박물관이 있다.

버드나무가 늘어져 정자와 누각 뒤로 보이는 옥룡설산이 항상 뒤따라 다니며 누가 사진을 찍어도 여기는 배경이 좋아 사진작가가 된다

날씨가 좋아 흑룡담호수에 정자와 누각이 비친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 신비의 옥룡설산도 보인다.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코스다.

 

 

 

 

 

흑룡담 득월루에 걸친 오공교를 너머 옥룡설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호수에 비친다

  

 

 

 

 

 

 

 

 

 

 

 

 

 

 

 

 

 

본래 나시족은 간쑤(甘肅)성과 칭하이(靑海)성 일대에 살던 티베트계 유목민족이었다.

인구수가 많지 않아 강대한 주변 민족의 눈치를 봐야 했던 나시족은 9세기부터 생존을 위한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나시족은 11세기 초 쓰촨성을 거쳐 윈난성에 진입하여 송말 원초에야 바오산(寶山)을 거쳐 리장에 정착했다.

 초창기 슈에중(雪崇)과 바이샤(白沙)에 살던 나시족은 입지가 더 좋은 분지로 지금의 리장고성인 다옌전(大硏鎭)에 정착, 도시를 건설한다.

북방의 목초지에서 남쪽 나라의 리장으로 이주한 뒤 나시족의 발전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13세기에는 대리국을 정벌하려는 몽골군의 침략을 받아 2세기 동안 쌓아 올린 재부를 모두 약탈 당했다.

18세기 청나라의 중앙통치를 직접 받으면서는 자치적인 민족토호정권이 붕괴되기도 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의 10년 광풍은 더욱 혹독해,

'남녀 모두 양가죽을 걸치는'(男女皆披羊皮) 유목민족 특유의 복식문화와 독자적인 생활풍습을 금지 당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나시족은 자신만의 문화와 풍속은 고집스레 잘 지켜왔다.

나시족은 티베트·강(羌)어계에 속하는 언어, 뜻과 음을 있는 상형문자인 동파(東巴)문자, 동파라는 사제가 주관하는

샤머니즘 원시종교인 동파교, 기본음계의 악보와 나시족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나시고악(納西古樂) 등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한족을 제외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독자적인 언어·문자·종교·문화·예술을 보존한 소수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점심식사

여강공항으로 간다.

 

 

 

 

 

여강공항 가는 길에는 밭농사가 한창이다.

 

 

 

백두산의 절반을 빼았기고 얻은 탕웨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