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인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이곳이다.
찍고 확인하고
타즈마할의 본궁(本宮)은 양파처럼 둥근 지붕과 그 건물 주변으로 원통형의 탑을 세웠다.
이 망루 같은 탑을 미나르(Minar)라고 한다. 타즈 마할의 둥근 지붕은 65m의 높이,
네 모퉁이에 서 있는 미나르의 높이는 75m이다.
가로 300m, 세로 580m 부지에 적사암으로 주위를 둘러싼 성곽과 위풍당당한 정문을 거쳐, 아치를 빠져나가면
바로 정면에 분수와 정원을 전경으로 타지마할의 완벽한 좌우대칭 웅자가 드러난다
황제 샤 자한(Shah Jahan)과 두 번째 아내였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1629년 샤 자한 대제가 데칸고원에 원정 중이었을 때, 뭄타지 마할 왕비는 브르한 프르촌에 가서 왕자를 출산하던 중
38세의 젊은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절세 미인이었던 마할 황비가 샤 자한 대제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오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 비보를 전해 들은 샤 자한 대제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가
사랑하던 황비를 위해 무엇인가 기념이 될 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귀국,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묘(墓廟)를 만들어 그녀의 넋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민간 비영리단체인 "New Open World Corporation(NOWC)"에 의해 조직된 산하단체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재단(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이 최근에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를 제정했다.
사적인 기부금, 셔츠와 컵등의 상품 판매로 운영 수익을 얻고 있는 이 단체는
1999년부터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선정 작업을 착수했으며, 인터넷이나 전화등을 이용하여 약 1억명을 대상으로 설문(투표/여론조사)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자료를 근거로 선정된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는 아래와 같다.
① 중국 만리장성 (Great Wall of China)
②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Machu Picchu)
③ 브라질 거대 예수상 (Christ the Redeemer statue)
④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Chichen Itza)
⑤ 로마 콜로세움 (Colosseum)
⑥ 인도 타지마할 (Taj Mahal)
⑦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Petra)
타지마할의 기단부는 사방 95m, 본체 사방57m, 높이67m, 네 귀퉁이에 있는 탑의 높이는 43m.
샤 자한이 그토록 사랑하던 왕비가 1631년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무굴제국의 국력을 총집결하여 건설한 깊고 깊은 사랑의 산물,
아내에게 바치는 연모의 결정, 삶과 죽음을 이으려한 집념의 상징이다
신혼 첫날밤 황제는 뭄타스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밤새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한다.
유난히 달밤을 좋아했던 황제는 보름달이 환한 밤이면 달빛에 비친 황후의 얼굴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타지마할이 달빛이 비출 때가 가장 아름답단다.
한 인도인이 좋은 사진 포인트가 있다고해서 찍은 곳이다.
알려준 댓가로 돈을 달라네 인도인들은 공짜가 없다.
돈을 달라고 할 때는 "뭐라고 뭐라고"하면 자기가 답답해서 포기한다.
바깥벽에는 뾰족한 아치가 정연하게 배열되었고
이 묘궁은 이슬람 사원처럼 네 귀퉁이에 높은 광탑이 세워졌다.
흰 대리석 벽면에는 붉은벽돌색·청색·초록·검은주황색의 초화식(草花式)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섬세하여 인간의 예술적 감각과 능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타지마할은 무덤이라기보다 장엄하고 화려한 황궁 같다.
그 웅장한 묘궁의 외부는 흰 대리석이 눈부시도록 화려하고 내부의 섬세한 문양과 조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대리석의 건물을 짓지 못하게 샤 자한은 이 무덤을 완성하고 나서
총감독은 목을 베고 여기에 동원된 유명한 석공들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이 대역사에는 2만명의 인부와 1000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됐다
타지마할을 이루고 있는 하얀 대리석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아침과 낮
그리고 석양무렵에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느낌으 달리한다.
수많은 대리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본관을 중심으로 타지마할을 둘러싼 4개의 첨탑 가운데 남서쪽 첨탑이 5도씩(4cm 정도) 바깥으로 벌어지게 함으로써
전면에서 똑바로 보았을 때 탑이 원근법에 의해 안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보일 수 있게 하였으며,
만에 하나, 지진이 발생하였을 경우 안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 믿어지지 않는 설계와 시공기술에는 그저 혀를 찰 뿐이다.
타지마할은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기둥을 나무로 만들었는데 전문가들은 근처 강물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하수위가 변하고 토양의 수분도 함께 줄면서 나무 기둥이 뒤틀리고 첨탑 일부에 금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서로 연결된 네개의 첨탑과 중앙 건물이 0.5~4cm 정도씩 밀고 당기면서
균형을 맞추게 돼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코란을 새겨 넣은 높은 대리석 기둥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맨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이 정확히 같은 너비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판의 너비와 글자를 넓히고 크게 새겨 넣은 그 세심함은 감탄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외벽 대리석에 정교한 꽃무늬 등을 조각해 사치를 극대화 하였고
삼나무잎 같은 무늬의 기둥이 있다
타지마할의 장식에는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이탈리아어로 '硬石'이라는 뜻)기법을 사용하였다.
타지 마할에는 이슬람과 힌두 두 문화가 절묘하게 혼합돼 있다.
아라베스크나 갈매 기형 무늬,그리고 창과 문 테두리의 뾰족한 아치는 이슬람색을 짙게 풍긴다.
그런가하면 벽면에는 힌두교의 만신상(萬神像)이 가득 조각돼 있다
음각을 이용한 문양
영묘입구의 대리석으로 된 정교한 창문은 말문이 막힌다.
그물모양의 대리석
피에트라 두라 장식기법
대리석에 문양을 판 뒤에 그 홈에 다른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
사용한 순백색의 대리석은 라자스탄 주 마크라나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영묘내부는 사진이 금지다. 그래서 영묘밖에 깨진 창문에 랜즈를 대고 찍는다.
영묘안에서 밖으로 보이는 대리석으로 된 창살
영묘안은 다시 키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든게 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놀랄 정도의 섬세한 조각과 백색의 대리석에 홈을 파서 유색의 대리석을 잘라
상감 처리한 정교한 기술은 더 이상의 다른 건축물과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렇게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땀과 세월이 흘렀을까?
관둘레에 있는 대리석을 조각한 담장안으로 관이 보인다.
내부는 온통 채색된 돌무늬와 갖가지 보석장식으로 뒤덮였다.
가묘실 벽면의 문양
내벽은 코란의 글씨를 큰 글씨체로 각자했는데 상부의 글씨는 폭을 더 넓게 하여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 똑같은 크기의 글씨로 보이도록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이 발로 되도록 해 놓았다.
황제 샤 자한(Shah Jahan)과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가묘
1층 건물 중앙에 위치한 좀 작은 관처럼 생긴 것이 뭄타지 황비의 무덤이고
왼쪽으로 약간 비껴 있는 큰 관이 샤 자한의 무덤이다.
지하에 있는 샤 자한(Shah Jahan)과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진짜 묘(퍼온 것)로 출입금지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내려가면 똑같은 위치에 실제 관이 놓여 있다.
그리고 무덤 주위는 대리석 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았고 그 안에는 촛불이 밝혀진다.
무덤에는 샤 자한과 뭄타지 황비의 사랑의 전설이 가득히 서리어 있는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는데 출입금지
타지마할 복도에 있는 이곳에서 밖으로 랜즈를 대고 찍으면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된다.
양각
양각으로 장식된 꽃앞에서 누워 부양하는 연습을 하는 청년
타지마할에 비친 샤자한의 사랑이야기
한밤중, 샤자한은 목이 타는 갈증을 느껴 눈을 떴다. 샹들리에의 촛불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누군가 물이 가득 찬 황금그릇을 코앞에 내밀었다. 왕비 뭄타즈 마할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목이 말라서 잠을 깬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뭄타즈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지. 샤자한은 왕비가 황제에 대한 걱정으로
남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과 한숨 짓는 것을 그동안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뭄타즈 마할이 두 번째의 왕비로서 아그라성에 들어온 것은 17년 전이었다.
결코 아름답지도 않았으며, 키도 작고 피부도 까만 전형적인 드라비다 여인이었다.
첫 번째 왕비나 세 번째 왕비의 미모에 비하면 너무나도 볼품없는 여인.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맑은 목소리와 넘치는 애교,
그리고 꾸밈없는 밝은 성격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성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였다.
입궐 후에도 다른 왕비처럼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치스럽지도 않았다.
왕비의 품위를 잃지도 않으면서도 늘 밝게 웃으며 매사를 솔선 수범함으로서 대신들과 궁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샤자한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해서, 언제나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술처럼 알아 맞추고는
그를 대신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는, 언제나 황제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며 사는 그런 여인이었다.
어느덧,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이 있거나 언제나 뭄타즈를 동반했다. 그녀는 심지어 황제가 전쟁터에 나갈 때도 두말 없이 따라 나섰다.
사랑이란 외모의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뭄타즈마할의 헌신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두 왕비의 따가운 눈초리와 질투를 감수하며 뭄타즈만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샤자한은 자신의 마음을 읽고 따르는 착한 그녀를 혼신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다.
다른 왕비들처럼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일도 없었다. 뭄타즈는 또한 샤자한에게 결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무려 14명의 자식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내, 그 이름 뭄타즈 마할이었다.
그런 왕비가 또다시 임신한 채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끝내 몸져누운 것이다.
이전과 달리 점점 야위어져 가기만 하는 아내의 모습은 샤자한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창백한 달빛이 아그라 성의 테라스에 걸친 어느 날 밤, 결국 뭄타즈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곁에 앉아있는 샤자한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왕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고. 뭄타즈는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황제에게 부탁하였고,
그는 죽어 가는 왕비의 손을 잡으며 굳게 약속했다. 1631년 6월 7일의 일이다.
뭄타즈는 14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마침내 황제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황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장례를 치르는 기간동안 흰 상복을 입고 왕비의 죽음을 애도했다.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 사후 곧바로 그녀와의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이로서 아그라의 야무나 강 남쪽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역사적인 착공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이름은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왕관모습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오스만투르크제국 최고의 모스크 전문 건축가 우스타드 라호리가 초빙되었고,
아지메르 지방에서 최고급의 흰 대리석들이 재단되어 속속 아그라로 도착되었다.
인도 전역에서 내노라하는 조각가들이 불려졌고, 이탈리아와 터키, 심지어 남미산 유색 대리석과 오닉스가 수입되었으며,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옥이 중국과 아라비아 등지에서 대량으로 수입되었다.
2만 명의 노예들이 건축가의 지시를 받아 무려 22년간의 대 공사 끝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무굴 제국의 영광과 샤자한의 명예에 걸 맞는 아름다운 자태로 창조되었다.
놀랄 정도의 섬세한 조각과 백색의 대리석에 홈을 파서 유색의 대리석을 잘라 상감 처리한 정교한 기술은
더 이상의 다른 건축물과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코란을 새겨 넣은 높은 대리석 기둥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맨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이
정확히 같은 너비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판의 너비와 글자를 넓히고 크게 새겨 넣은 그 세심함은 감탄사만으로는 부족하다.
본관의 주위에 높이 솟아있는 네 개의 미나르(첨탑)는 타지마할의 완성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본관을 중심으로 5도씩 바깥으로 벌어지게 함으로써 전면에서 똑바로 보았을 때 탑이 원근법에 의해
안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보일 수 있게 하였으며,
만에 하나, 지진이 발생하였을 경우 안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 믿어지지 않는 설계와 시공기술에는 그저 혀를 찰 뿐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정문은 중앙운하에 한가로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본관의 맞은편에 열려있으며,
건축의 균형과 세련미를 위해 본관의 한쪽 옆에 모스크를 만들고는 그 반대쪽에는 모스크와 외형이 똑 같은 건물을 세운 그 치밀함이여.
가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타지마할이 건설되면서 죽은 후 2년 동안 그 앞뜰에 임시로 묻혔던 뭄타즈마할은 바닥 공사가 끝나면서 바로 타지마할의 지하에 옮겨졌다.
타지마할이 완성되는 날, 샤자한은 성대한 행사를 갖고 뭄타즈마할의 영혼을 다시 위로했다.
죽은지 23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전의 왕비를 사랑하는 샤자한의 눈에 뭄타즈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살아있었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오히려 더 괴로워했다. 타지마할을 볼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움은 다시 고통으로 다가왔다.
황제는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시 쉬는 게 좋겠다는 대신들의 조언을 받아,
조부인 악바르 대제 시절의 한때 수도였던 파테푸르 시크리로 6개월간의 휴가를 떠난다.
샤자한이 대리석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병적이다시피 했으므로,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파테푸르 시크리 성내에 자리하고 있었던 성자 시크리의 초라한 무덤을
대규모의 대리석으로 증축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한편, 시민들에게 1년에 한번씩은 이곳을 순례하도록 하였다.
그는 뭄타즈마할이 없는 아그라에 머물기보다는 외부에 출타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윽고 조부 후마윤의 수도였던 델리에 샤자하나바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샤자한은 장차 이슬람세계의 끝까지 그 명성을 떨칠 도시를 건설하기 위하여
붉은 사암의 거대한 성, 이른바 '랄킬라'를 짓기 시작했다.
성안에는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짓도록 명령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자마마스지드이다.
샤자한이 제국을 통치하던 30년간, 제국의 확장에 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타지마할의 건설로 국고가 결국에는 바닥을 드러내게 됨으로서 그의 업적이 빛을 잃게 되었다.
말년에는 중병에 들어 국사를 돌보기가 힘들어 지게 되었고,
왕비 뭄타즈마할에 대한 그리움으로 야무나 강 북쪽 타지마할의 반대쪽에,
이번에는 검정대리석으로 타지마할과 같은 거대한 자신의 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제의 임종과 국고의 탕진을 염려한 네 아들이 서로 황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되었고,
그 중 군인기질이 가장 풍부한 야심가 아우랑제브가 장남과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재빨리 아그라를 차지함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쥐게 된다.
그는 아버지 샤자한을 아그라 성채의 작은 방에 감금하고는 아버지가 진행시키던 샤자한의 묘의 건축을 중지시켰다.
무려 8년이라는 기간을 이곳에 갇혀 살던 샤자한은 75세의 나이로 멀리 야무나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면서 쓸쓸히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사후 그의 묘는 타지마할 지하의 뭄타즈마할의 관 옆에 안치되었다.
뭄타즈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타지마할 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에도 네 번씩 색깔을 바꾼다는 타지마할의 자태는 고요한 달빛에 비칠 때면 보라 빛을 띤 상아색으로 바뀌고,
그 고운 모습은 마치 샤자한과 뭄타즈마할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아그라 성채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면, 멀리 떨어진 타지마할을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8년 동안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샤자한의 애절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랑을 논하려면 아그라를 먼저 가 보라. 사랑과 애달픔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 아그라는 그런 곳이었다.
'My travel abroad. > India(2012,J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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