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roatia(2011.Aug)

3-1 자다르의 아침(The morning of Zadar)

봉들레르 2011. 9. 13. 01:29

 

새벽부터 숙소 바로 앞 골목에서 진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자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간혹 여행객들이 왁자지껄 하면서 한패가 지나가곤 한다.

 아침 6시경의 광장은 어제 저녁과는 대조적으로 한적하기만 하다.

로마시대의 특징을 잘 살린 커다란 광장으로, 르네상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자다르 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곳이다.

시계탑, 시청, 카페, 레스토랑들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시청사

 

Zadar Narodni Trg(People's Squate)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지금과 같은 도시는 케사르시대에 요세화 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성벽과 탑 그리고 출입문들을 내륙 쪽으로 향하는 방향에 만들었다.

도시의 서쪽부분은 집회장소(Forum)이며 바실리카 성당과 수도원이 있는 사원이 있다.

도시 성벽 밖에는 원형경기장과 묘지가 있다.Vransk호수로부터 물을 끌어오던 수로교는 일부분 남아있다. 

고대도시 안쪽은 일련의 교회와 수도원이 만들어질 때 중세도시로 발전 됐다.

중세 때 자다르는 완전한 도시 면모를 갖춘 곳이었으며 지금도 그런 모습이 남아있다.

2차세계 대전 때는 폭격으로 인하여 모든 도시가 파괴 되었고 일부분만을 복구 하였다.

16세기엔 베니스인들이 내륙쪽을 향하는 도시방어벽을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방어벽 시스템으로 오각형 모양의 요새를 보강 했고 또 다른 도시를 이 고대도시 바로 앞쪽에 건설 했다.

동시에 공공 물탱크 3개를 만들었다.

16세기 전반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 성당을 개조 했다.)

 17-18세기에 성벽과 탑 사이에 방어용 참호(Fosa)를 팠었고 이태리가 이곳을 차지 했을 때 완전히 묻어 버렸다.

 비록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도시의 요새가 파괴 되었지만 성벽은 항구와 도시를 따라 서있으며

지금은 그 당시 주추돌들과 도시 전체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성 도나타 성당(Crkva Sv. Donata) 원통형 투브모양을 하고 있다.

9세기경 로마시대 포럼 유적지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자다르의 대표적 명소이자 달마시아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비잔틴 건축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19세기부터 성당으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으나, 음향 효과가 뛰어나 연주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도나타 성당의 돔

도나타성당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광경(퍼온 사진) 

성당은 원통형 모양으로 만들어 졌고 내부는 이중 공간으로 되어있다. 오랫동안 신성한 예배 기능에는 벗어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행사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엔 성 도나트의 음악의 밤을 오랫동안 열었었다. 

도나타성당 밖 음악회

공중에서 본 도나타 성당

도나타성당과 종탑사이는 성아나스타샤(Katedrale Sv. Stosije) 대성당

성 도나타 성당 종탑

고대 로마 도시의 시민광장으로 사용된 장소로 자다르의 포룸은 로마 황제 오거스투스가 세웠다.

제 2차 세계 대전때 폭격으로 손상되었으나 1964년시작한 복구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다

자다르 한가운데 있던 로마포럼은 지금은 흩어진 벽돌조각만 뒹군다. 한때 발굴을 시작했다가 워낙 유적의 규모가 커서 다시 덮었다고 한다.

 대신 그 흔적은 또렷하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토론을 벌였음직한 광장의 끝에는

제우스상을 비롯해 로마인들이 모셨던 3명의 신상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가축을 잡아 제단에 올렸다고 한다.

로마시대에 지은 중심 광장인 Forum을 중심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따라서 이곳은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연안에서 건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소에 포함된다.

로마시대 포룸은 AD3세기에 만들기 시작 해서 BC1세기에 완성하였다.

이 포룸에서 북, 동, 서쪽 지역은 기념비적인 집회 장소이며

그 곳을 지나며 전시관, 물건 파는가게, 바실리카 성당 그리고 홀이 있으며

이곳 들은 모임 장소나 도시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St. Mary 교회와 수녀원

포룸의 동쪽엔 교회와 베네딕트파의 성모마리 수녀원이 있다. 수녀원은 1066년 치카(Cika) 수녀가 세웠다.

그녀는 자다르의 귀족 Madijevacs 가문 출신이다.

3개의 회랑을 가진 성모 마리교회는 1091년에 봉헌 되었다.

성당의 참사회 홀과 종탑은 치카의 딸인 Vekenega수녀가 12세기 초에 새웠다.

이들 건축 공사에 크로아티아-헝가리 왕인 콜로만(Koloman)이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다.

왕의 이름은 종탑 기둥머리에 새겨넣었다. 교회의 주 정면입구와 남쪽면 입구는 베니스 르네상스 스타일로 만들어 졌다.

내부는 1477년부터 아주 사치스런 로코코 스타일의 회반죽으로 장식되어 있다.

 

 

베네틱트파 수녀원 성마리엔 영구히 보존 전시된 교회 예술품이 있다.

“자다르의 금과 은”이라는 것으로 크로아티아 문화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 중 하나다.

 

 

광장을 중심으로 피터, 아몬, 메두사 등 여러 신상들이 부조된 기둥의 유적과 함께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많아 자다르의 건축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수녀들만 거처하는 베네딕트 수도원에는 중세의 성물들이 가득하다. 가장 독특한 것은 성자들의 유골을 수습해 금관에 보관한 ‘렐리쿼리’.

불교로는 사리함이라고 보면 된다. 정교한 단장을 한 이사도라 성녀의 손뼈를 담은 렐리쿼리를 보면 세심한 장식에 감탄스러울 정도다.

원래 이곳은 2차대전 중 독일군들이 머물렀던 사령부로 한때 이런 보물들을 찾기 위해 건물을 샅샅이 뒤졌지만

1층과 지하 사이의 틈새에 당시의 유물을 25년 동안이나 숨겨놓은 덕택에 지금까지 보존됐다.

1840년까지 형을 받은 죄수들이 사슬에 매달아 놓는 용도로 사용된 수치심 기둥

죄수를 매달았던 쇠사슬이 그대로 남아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Monestary Zadar)

자다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유적은 바로 로마포럼. 자다르 한가운데 있던 로마포럼은 지금은 흩어진 벽돌조각만 뒹군다.

한때 발굴을 시작했다가 워낙 유적의 규모가 커서 다시 덮었다고 한다. 대신 그 흔적은 또렷하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토론을 벌였음직한 광장의 끝에는 제우스상을 비롯해 로마인들이 모셨던 3명의 신상이 새겨져 있다. .  

자다르는 중세에는 로마교황청에서 직접 관장했던 중요한 도시였다. 자다르라는 말은 ‘신의 선물로 드린다’는 뜻.

그래서 거리에는 10개의 교회(church)와 1개의 대성당(cathedral)이 있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교회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로마 가톨릭의 성당이다

공중에서 본 광장

한적한 해변으로

자다르는 앞바다의 풍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0여개의 섬이 산재한 코르나티제도가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12야'의 무대도 코르나티제도라고 한다.

머리를 몇년을 길렀을까?

 음향학과 건축이 조화된 이 바다 오르간은
바로 달마티아의 석공들과 건축가 니꼴라 바시치(Nikola Basic)의 작품
.

 

세계 유일의 바다가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신항구에 해변을 따라 75m의 산책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파도에 따라 자연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신비감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7계단 하단에 35개의 파이프가 작은 구멍 안에 설치되어있어 파도의 크기,속도,바람의 세기에 따라

바닷물이 공기를 밀어내며 구멍 사이로 소리를 내게 설치되었다

바다쪽의 구멍으로 들어간 바람이 윗쪽 구멍을 통해서 소리로 바뀌어 나온다.

야드롤리야 홈페이지(http://www.jadrolinija.hr/default.aspx?dpid=1522)

차를 싣고 이탈리아를 오가는 호화유람선 야드롤리야 Zadar - Ancona 

자다르 해변 동영상

 

항공사진을 보면 위치를 알 수있다.

아래에 유람선이 서있고  그 오른쪽 해변에 바다오르간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낚시

햇살 받은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바라보며 해변끝에서 다른 길로 돌아 나오니

옛날 아파트가 보인다.

갈때는 광장을 가로질러 갔는데 올때는 죄수를 매달았던 기둥쪽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성당

성아나스타샤 대성당과 종탑

 

아침 햇살에 빛나는 대리석들

The Morska vrata ("sea gates")

 1991년의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는 '구 유고연방'군과 세르비아군의 공격을 받아 지금도 많은 건물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와 함께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포하였우나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 정부군간 내전이 발생해 30여만명이 죽었다.

많은 건물에는 아직도 크고작은 총탄자국이 남아있다.

대리석으로 바닥이 깔려있어서 햇살에 비추이는 대리석은 눈이 부실정도다

 자다르 근처에 있는 Preko와 Bibije를 왕복하는 작은 유람선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행객들이 밀려든다.

backpaker들도 도착을 했다.

성곽위에서 보니 아침 모닝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길떠날 준비를 하는 어떤 가족

성곽위에서 바라다 본 깊숙히 들어 온 바다와 건너편의 신시각지.

모든 대중교통은 성곽밖으로만 다닌다.

16세기엔 베니스인들이 내륙쪽을 향하는 도시방어벽을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방어벽 시스템으로 오각형 모양의 요새를 보강 했고

 또 다른 도시를 이 고대도시 바로 앞쪽에 건설 했다. 동시에 공공 물탱크 3개를 만들었다.

 16세기 전반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 성당을 개조 했다.)

 17-18세기에 성벽과 탑 사이에 방어용 참호(Fosa)를 팠었고 이태리가 이곳을 차지 했을 때 완전히 묻어 버렸다.

비록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도시의 요새가 파괴 되었지만 성벽은 항구와 도시를 따라 서있으며

지금은 그 당시 주추돌들과 도시 전체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자다르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노천시장이다 지금과 같은 도시는 로마시대에 벌써 만들어 졌다 .

고추를 엮어서 매달아 놓았다.

 

 

아침식사전 6시에 나와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돈다.

 

숙소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