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Srilanka(2011.Feb.)

9-7 In Galle(갈레에서)

봉들레르 2011. 3. 1. 11:35

 

웰리가마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서서 올라오면서 아쉬움에 눈길은 자꾸 바다로 향한다.

어느듯 오후가 저물어 간다.

저녁의 해변은 정적만이 감돌고

 

길거리에는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팔고있다.

새우

여기저기에 바다나 강가에서는 즉석에서 잡은 고기를 파는 광경을 볼 수있었다.

     

이 곳 갈레는 유네스코지정된 곳이다.

17:18분에  Galle요새에 도착하니 신혼부부차가 와 있다.

웨딩화보촬영

사진사가 갖고있는 카메라보다 내 것이 더 좋아보였는지 찍어달라고 난리다.

 

갖가지 장면을 연출하고

 

아름다운 신부

여기는 다른 신혼부부

 

이쪽이 더 세련됐다.

 

갈레는 스리랑카 남부의 최대 항구 도시이다. 역사도 매우 오래된 항구로서

14세기 경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의 동방 무역 기지로 번영했었다

그 후 근대로 접어 들면서 1589년에는 포르투갈인 들이 최초의 성채를 이곳에 세웠는데,

이를 계기로 갈레에서는 외국인들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1640년에는 네덜란드가 성채를 확장하면서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갈레의 원형인 것이다.

영국 식민지시대에도 지배의 거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견고한 성채를 가진 요새 도시로 완성되었다.

갈레의 역사는 바로 스리랑카의 피지배 역사라고도 할 수있다.

생각보다 작은 갈레의 철도역을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적갈색의 석조 시계탑과 높은 벽으로 구시가를 둘러싼 성채이다.

 이 성채를 구경하기에는 해질녘이 가장 좋다. 성채에 둘러싸인 구시가는 인도양으로 튀어나온 반도로 되어 있어 석양은 이 반도의 서쪽으로 진다.

저녁노을이 성벽에 비치면 마을 전체가 오렌지빛으로 물들며 반도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등대만 희미하게 빛난다.

 이 시간이 되면 식민지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집들에서는 저녁식사를 짓는 코코넛 기름의 달콤한 향기가 피어나면서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이섬을 오래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성채는 이제 이곳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생활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 듯하다.

 

 

 

갈레성채의 항공사진

문은 닫지도 않고서 그냥 달린다.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수는 30,196 명, 상해자 16,556 명, 실종자 3,853 명, 이재민 835,259 명,

천막이나 임시가옥이 세워진 난민캠프의 수는 773 곳이다

 

쓰나미 때문에 여기저기 빈집이 많다.

 

어느듯 해가 바다위에 금빛을 선사한다.

 

 

18:00에 섬 불교사원에 차를 세우고 석양을 감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