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Srilanka(2011.Feb.)

6-1 Morning in Nuwara Eliya(누와라 엘리야 아침)

봉들레르 2011. 2. 23. 18:09

 

<누와라 엘리야>가 사람이 살지 않는 늪지였다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19년, 한 여행가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1826년 코끼리 사냥에 나섰던 영국군 장교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그곳에 당도하여 

당시 영국의 <실론> 총독이던 <에드워드 바네스>경에게 보고하고, <바네스>총독은 직접  현장을 둘러본 총독은 

 2년 후인 1828년 자신의 <방갈로>를 그곳에 건설하고 군요양소로의 개발을 서둘러 연회를 자주 개최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도로연결도 추진하였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스리랑카 전역으로 부터 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와라 엘리야>를 가장 열심히 개척한 사람으로서는 <바네스> 총독 이외에 

영국인 <사무엘 베이커>는 26세이던 1847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그곳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베이커>는 7년 후 그곳을 다시 방문하여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집착을 보여 개발하는데 필요한 거의 대부분을 배를 전세 내어 영국으로부터 실어왔다.

  농장관리인과 그의 가족에서부터 대장장이, 아홉 명의 일꾼들, 온갖 종류의 씨앗, 제재소, 황소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양 세 마리, 말 한 마리, 사냥개  등 온갖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경작하는 데는 코끼리를 이용했다.  

밀재배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귀리와 보리재배에는 재미를 보았다.  

이로써 맥주양조장을 세워 고산지대 마을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오늘날 그가 일구었던 농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채소와 동물들과 맥주 등 그가 남긴 유산들은 아직도 맥을 잇고 있다

 

밭에는 당근들이 퍼렇다.

새로 심어 이제 싹이 나온 것도 있고

 

 

 

누와라 엘리야는 ‘구름 위의 도시’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아침이면 구름 같은 안개에 싸여있다.

 게다가 주야간 일교차가 커서 좋은 차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개는 찻잎에 맑고 신선한 수분을 주고, 곧이어 얼굴을 내미는 태양은 차가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다.

당근과 마늘

 

조그만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다.

 

 

구름이 연출하는 아침의 누에라 엘리야

 

 

 

아래로 걸어 내려오자 우리의 숙소 간판도 보인다.

 

누와라 엘리야 시내 도처에 펼쳐진 녹지, 이것이 아시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골프 코스이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는 경마장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골프장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골프장은 1880년에 영국인 농장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누와라 엘리야 골프 클럽 (The Nuwara Eliaya Golf Club)에서 경영하고 있는데 6,250야드, 18홀이 있는 본격적인 골프장이다.

마을 중앙에 있다는 입지 조건과 굴곡이 풍부한 설계로 호평 받는 곳이다.

클럽 하우스 물론 식민지 풍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바는 물론 실내 배드민턴장도 있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국풍의 고풍스러운 제트윙 세인트 앤드류스 호텔 (Jetwing St Andrew's Hotel).

고산지대라 서늘한 기운에 학생들의 옷차림이 틀리다.

한참을 내려와 평지까지 왔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집에 있던 스리랑카인들이 한사코 들어오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이냐 북쪽이냐 물어본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자. 그냥 주소를 알려주면서 꾸기꾸기해서 버리지말라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내가 "힝" 코풀어서 버릴것이라고하니 박장대소를 한다. 국제언어가 통하는 순간이다.

안에서 구워서 내오는

호퍼를

  그들과 같이 먹고

만들어 주는 홍차도 마셨다.

참으로 친절한 그네들이다. 모닝차와 요기를 했다.

스리랑카인들과 잘 어울리니 그냥 여기서 눌러서 살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초등학생같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등교하는 학생들

아빠 손을 잡고서 학교로

 

위 화살표에 숙소에서 가운데 세모까지 왔다가 돌아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