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n abroad/아프리카

잔지바르 섬

봉들레르 2011. 1. 12. 08:53
인도양에 보석처럼 떠 있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이 나라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괜찮아)’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한다. 웬만한 일에는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자’라는 그들의 굳은 신조는 여행자들마저 ‘감염’시킨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꺼내들던 노트와 펜도 놓아버렸다. 내일하면 되니까.

메트로폴리스에서 동료와 경쟁하며 살아온 직장인들은 잔지바르 사람들이 게을러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할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모든 사람의 꿈 아닌가.

 

아랍과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절묘한 조합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랍계, 인도계 사람들이 1000년이라는 역사동안 조화롭게 융합된 모습을 만들어 온 섬이다. 역사적으로 수메르, 이집트, 인디언, 오만, 페르시아, 네덜란드, 영국 등 수많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탄 아일랜드다.

잔지바르라는 이름도 페르시아어의 잔지(흑인)와 바르(해안)를 합한 것이다. 잔지바르는 아랍인의 손을 거쳐 한동안 노예 집산지로 번영하다가, 30여년간 오만 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이후에는 아랍인 술탄이 이곳에 거주하다 1964년 탄자니아와 통합되면서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에 있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코피아를 쓴 남자들과 대담한 원색의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카펫이며 항구 앞에서 파는 진한 이슬람식 커피는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작은 마을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와 세월의 더께를 안고 있는 회벽,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진 길…. 잔지바르의 스톤타운은 아랍식 가옥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골목길이 미로처럼 퍼져 있다. 골목 끝마다 등장하는 모스크와 이슬람식 생활을 위한 물건을 파는 시장들은 이곳이 아프리카인지, 중동의 어느 나라 뒷골목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회벽 건물들과 그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가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여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분이 야릇해진다. 골목길은 나도 모르게 옛날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오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 잔지바르를 파라다이스로 만든 능위비치

탄자니아 섬의 어느 해변에 가나 쪽빛 바다를 즐길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은 북쪽에 있는 능위(Neungwi) 비치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한없이 여성적이고 따뜻하다. 게다가 동력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배 ‘다우(dhow)’가 바람에 두둥실 떠가는 것을 보노라면, 여백의 미가 뚝뚝 넘쳐 흐르는 풍경화 한 폭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투명한 바다에 잔지바르의 대표적인 향신료 ‘클로브(clove)’ 향이 묻어나는 공기.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고 귀가 씻겨진다.

잔지바르 섬이 유럽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그런지 호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멋진 레스토랑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밤이 되면 낭만적인 촛불이 흔들리는 테이블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올라간 피자를 맛본다. 이때 바람이 슬쩍 머리카락을 건드려주기라도 하면 기분은 배가된다. 여기에 아프리카 청년들의 유연함과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아크로바틱 공연도 수시로 펼쳐져 밤마저 짧게 흘러 버린다.

# 놀라운 크리에이티브가 엿보이는 문

잔지바르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리면 안되는 것이 향신료다. 한때 향신료는 잔지바르 섬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오죽하면 ‘스파이스 아일랜드’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특히 클로브에 있어서는 세계 최대의 산지다.

요즘 향신료 산업은 한창때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스파이스 투어’는 꼭 한번 해봐야 할 투어다. 여행사 스파이스 투어를 신청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가이드가 여행자들을 향신료 숲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스파이스의 왕이라는 ‘카다몬 클로브’, 모기를 쫓는 데 쓰인다는 ‘레몬 글래스’, 말라리아 예방약에 쓰이는 ‘클로로킨’ 등 수십 가지 향신료의 특성과 향을 설명해준다. 그저 향만 즐기던 향신료를 재발견하는 시간이다. 넘치는 향신료 덕분에 잔지바르 어디에서나 은은한 향을 맡을 수 있는 것도 잔지바르를 묘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잔지바르의 또다른 매력은 문이다. 예로부터 잔지바르에서는 문의 크기와 사용하는 나무 재질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냈다. 열쇠가 무겁고 목재가 두꺼울수록, 천장이 높을수록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 주로 마호가니나 티크, 잿플롯 같은 나무들로 문을 만드는데 문양도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요즘도 지하철에서 조간신문을 넘길 때마다 잔지바르가 불쑥 그리워진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짜여진 우리 삶과는 달리 잔지바르의 구불구불한 길, 이름모를 향신료, 화려한 해변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 그 섬에 가는 길

잔지바르는 탄자니아의 남동쪽 해안에 있는 섬이다. 탄자니아 제1의 도시 다르에르살람에서 배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갈 때는 케냐 나이로비에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잔지바르가 탄자니아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잔지바르에 들어갈 때 입국심사를 다시 받는다. 비자가 필요없다. 스톤타운에는 아프리카 예술가들이 많아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만날 수 없는 멋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공예품 수준도 남달라 쇼핑을 하기에도 좋다. 또 각 해변에는 다이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잔지바르에 들어가면 무료로 제공되는 여행책자를 꼭 챙기자. 아프리카 여행정보가 듬뿍 담겨있다. 스톤타운에는 인터넷 카페도 있어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하면 노트북을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