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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ius's Travel Photos 1

봉들레르 2009. 11. 6. 16:04

뉴델리 중앙역의 플랫폼을 잇는 통로입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행렬이 강물처럼 이어집니다.  인도에 인구가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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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행열차의 안입니다. 좌석도 SL(Sleeper Class)도 자리가 없고  별 수 없이 입석을 끊었는데, 운이 좋아서인지 한 시간 정도 서서 가니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그 다음부터는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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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서 잡상인들이 팔고 있는 음식입니다. 으깬 감자로 안을 채운 음식입니다.  접시는 나뭇잎을 여러 장 겹쳐  눌러 오목한 모양을 만든 후 잘라서 말린 형태로  한 번 쓰고 버리면 되는 완전히 환경친화적인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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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소가 아직도 숭배받는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힌두인들은 소를 숭배하지만, 그 외의 종교, 예를 들면 이슬람 교도들은 힌두인과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여행자들이 소를 그냥 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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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첫 밤은 공항에서 새웠고, 둘째날 밤은 잔시에서 머물렀는데, 호텔이 수준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에 새 소리가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으러 나왔습니다.  정전이 되어서 화장실에 가니 창문도 하나 없어서 문을 열어둔 채 볼 일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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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마귀인 것 같습니다. 깍깍 우는 소리가 아주 시끄럽고 세력도 강한 것 같습니다. 쓰레기 중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소와 이 녀석들의 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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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들... 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는 행동은 거지와 별로 구분이 안되지만, 일단 특별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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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시에서 그나마 가볼 만한 곳이었습니다. 현지인은 2루피, 외국인은 200루피(달러로 지불하면 좀더 쌉니다, 아마 직원들의 비리를 막기위해서 일지도...)전날 밤 음식점을 찾다 지쳐서 제과점에서 케익 조각 몇 개로 저녁을 때웠는데,  아침에 나와 봐도 음식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길거리 좌판은 마음이 안 내킨다는 친구가 있어서 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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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시 성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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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성채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성이기 때문에 그런 대로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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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시에서 카주라호까지는 시외완행버스로 약 5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달리는 동안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그나마 바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ㅜ,ㅜ

사진의 냉차장수가 보여주듯 일반적으로 낙천적인 반면, 여행자들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은 호객에 있어서의 끈질김이 극에 달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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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디나 바싹 말라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진의 언덕은 정말 오랜만에 벌판이 아닌 것을 만나 반가워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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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장터... 소는 어디나 몇 마리씩 어슬렁거리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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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아저씨.. 우리에게 사진찍으라 애걸하다시피해서 찍어주었습니다. 인도에 가장 흔한 과일은 망고, 바나나 두 가지였고, 다른 과일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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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자동차가 좌측통행이라는 것은 다 아실 것이고....유명한 곡예운전입니다. 차선이 없다보니 큰차 우선입니다.  같은 크기라면 담이 적은 운전자가 비킵니다. 사고가 많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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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청소부로 한 몫 단단히 하는 새입니다. 찌르레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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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에 도착하여 한 밤 자고 다음날 아침 길거리의 잡상인이 좌판 벌리는 것을  찍었습니다. 그릇에 담긴 원색의 염료가 화려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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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동쪽 사원군만 입장료를 받습니다. 그만큼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죠.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원입니다. 오른쪽이 락시마나(Lakshumana) 사원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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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juraho의 서쪽 사원군에 속하는 Lakshmana 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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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사원이 있고 사진에 나타나 있는 작은 부속 사원이  좌우와 뒤쪽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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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juraho의 서쪽 사원군에 속하는 Lakshmana 사원의 입구 정면 위쪽으로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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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사원의 입구는 잠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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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 봉안되어 있는 주신상입니다. 시바인지 비쉬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 뒤쪽으로 까만 삼각형은 구멍이고 머리 뒤의 공간에 불을 켜 놓으면 그 구멍으로 빛이 새어나와 신의 후광을 실제로 느끼게 해 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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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닿지도 않는 여신상의 여러 부위를 누가 만지는지 번질번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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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 위쪽의 장식은 괴물의 입에서 나오는 화염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잘 보면 그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런 섬세한 조각이 가능한 것은 아무래도 사용된 돌이 사암으로 화강암처럼 단단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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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shmana 사원의 겉벽입니다. 대단히 정교한 남녀의 신들 및 괴수 등이 끝없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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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juraho의 서쪽 사원군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는 Kandariya 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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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리아(Kandariya) 사원의 벽면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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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리아(Kandariya) 사원의 입구 쪽에서 바깥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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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리아(Kandariya) 사원의 전경 사진입니다. 노란 깃발 달린 사원은  칸다리아(Kandariya) 사원의 왼쪽에 있는 사원으로 담장 밖에 있으며 실제로 힌두교인의 예배에 사용되는 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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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서쪽사원군들 중의 하나인 비스바나트(Visvanath)사원입니다.  난디(Nandi)사원과 마주보고 있으며 칸다리야 사원 못지 않게  아름다운 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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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vanath 사원에서 본 락시마나 사원과 자가담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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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스바나트(Visvanath)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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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나(Mithuna)상이 신성한 사원에 조각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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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이 아름다운 이 사람은 가슴이 밋밋한 것으로 보아 남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팔이 여러게 달려 있는데, 제일 뒤에 있는 손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방패인 것 같습니다. 속옷이 아니라 갑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팔들이 훼손된 것이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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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몇 주간의 입정에 들었을 때 폭풍우가 몰아치니, 뱀의 왕인 커다란 코브라가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석상은 자이나교의 선각자인 파르시와나트입니다. 그가 명상할 때도 뱀이 보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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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잘 만들어지고 보존도 잘 되어 있습니다. 불상처럼 보이지만 석가모니가 아니고 자이나교의 신도들이 모시는  파르시와나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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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의 박물관입니다. 나치 표식이 선명합니다^^.  나치 표식을  역십자라고 하는데, 불교적 입장에서는 역만(卍)자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역십자든 뭐든 간에 불교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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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마 템플로 생각됩니다.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 때 적어두어야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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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에서 사트나까지는 버스로 거기서 바라나시까지는 기차의 침대칸을 이용했습니다.  카주라호에서 머물렀던 호텔의 매니저가 버스와 기차표를 예매해 주었습니다. 물론 수수료 챙기고요. 직접하고 싶어도 사트나 가기 전에 예매할 수가 없으니까요.  기차는 삼 층 침대에서 자는 사람들...  다들 잘 자나보네요. 저는 짐 걱정과 불편한 자리 때문에 잠자리가 편치 않았습니다.  12시 넘어 잠들어서 5시쯤 기상했는데, 의외로 평소 가장 까다로운 우리 공주님이 가장 잘 자더라는...

사트나에서 버스에서 내려 어떤 친절한 현지인의 안내로 역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역에서 예매한 침대를 확인하였더니 모두 대기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매지저를 욕하면서 다시 알아보니 컨펌이 되었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 일단 역 근처에서 식당을 찾았습니다. 인도식 음식으로 요기를 한 후 역으로 다시 올 때는 이미 컴컴해진 후라 바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바라나시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사트나 출발이기 때문에 정시에 들어옵니다. 기차 칸에 붙은 명단을 확인하는데, 한 역무원이 허겁지겁 뛰어와서 우리에게 어떤 기차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갑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다섯시쯤 도착하도록 예정된 기차가 오전 11시쯤 되어서야 바라나시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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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도인... 구도자인지 거지인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바바지라고 부르더군요. 바바는 "아버지"이고, "지"는 높임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아버지"라는 말에서의 "지"도 같은 어원을 가졌다고 하는 분도 계신데, 제가 잘 모르니 패스.... 인도에서는  거지를 흔히 바바지라 부른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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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마약효과가 있는 나뭇잎에 향료와 석회 갠 것을 바른 빤이라고 하는 것을 2루피 정도에 파는데, 인도인들은 담배를 피우듯 이것들을 심심풀이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약간 달콤 쌉쌀한 맛을 느끼긴 했지만 핑 돈다던가 취한 듯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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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하류 쪽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으로 수없이 많은 가트(ghat: 즉 화장터)가 늘어서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화장을 행하는 가트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이깔으니까" 가트는 실제로 방문을 해 보았는데, 가트의 사진을 찍으면 현지인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벌금도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트에서 몇몇 현지인들이 접근하여 사진 한 컷트당  10달러를 지불하면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여 아연실색할 뻔 했습니다. 불법적으로 눈 감아 주는 대가로는  엄청나게 비쌀 뿐만 아니라, 그들이 허용을 한다해도 고인의 친지들이 사진 찍는 것을 보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가트 사진을 찍는 것은 포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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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의 교리를 설명한 책을 갠지스강가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발견하고  신기해서 찍어보았습니다. 대종사께서 남기신 말씀을 담은 대종경에 보면 언젠가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한국으로 와서 원불교의 진리를 배워가기 위해 애쓸 것이라는 예언이 남겨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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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도하는 힌두교인의  의식을 푸자(pooja)라고 하는가요?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신과 삶을 대하는 사람들은 보는 이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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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과 나룻배는 인기있는 피사체이죠.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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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잔잔한 강물은 사람을 편안한 마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특히나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 강에서 맞이하는  일출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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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거리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 못 살고 못 먹던 시절 - 의 나 자신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그래도 우리는 저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관심 속에서 자랐던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와 누렁개의  앉아있는 모양새의  비슷함이 함께 또 따로 - 함께 있되 함께 있지 않는 듯한 묘한 조합을,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수많은 세월 부대끼며 흘러가는 삶에서 인연이 오면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그런 관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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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너무 어둡게 찍혀 보정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보정해도 좋아지질 않네요. 성스러운 물 속에서 아침의식을 행하거나 어딘가로 향해 길을 떠나는 모습이 한가롭게 보이는 것은 여행자이기 때문일까요? 바라나시의 러시아워에 밀리고 혼잡한 거리는 서울시내에 못지 않은 바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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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인 것 같습니다. 얼굴 생김이 유럽사람 아닌가 할 정도로 아리안인들은 서양사람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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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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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때  쏟아지던 비가 무색하게 하늘이 맑게 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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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종교의식은 주로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 행해집니다. 힌두사원에서 시간 맞춰 보는 예배 같은 것은 없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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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유행의 팬티처럼 보이는 섹시 만 점의 팬티가 이색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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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 힌두 대학교의 학생인데, 깨끗한 옷차림과 손에 든 핸드폰이 유복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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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 힌두 대학교의 도서관입니다. 학교가 엄청나게 커서 결코 걸어다닐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컴퓨터 바코드를 이용하는 우리학교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70년대 처럼 카드를 찾아 제출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좀 어둡고 덥지만, 학생들의 열의는 대단해 보였습니다. 도서관에 딸려있는 컴퓨터실에서 잠시 한국의 사이트를 접속해보았는데, 집에서 그 사이트를 접속하는 것보다 오히려 빠릅니다. 인도가 IT의 강국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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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혼잡한 거리 풍경입니다. 두 명 정원의 오토릭샤에 몇 명 탔는지 보이십니까? 우리는 네 명씩 타고 다녔는데, 저들은 한 술 더 뜨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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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을 교섭하여 탔는데,  도중에 우리 배에 올라 온 아줌마가 우리가 긍정을 표하기도 전에 불을 붙여 내밉니다. 가족의 행복을 비는 축원등불을 물에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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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떠가는 시체를 보는 것이 거기서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나 처녀, 총각, 또는 불가촉천민들 등은 화장을 받을 자격이 없어서 물에 던져지게 된다고 합니다.  물가에 떠내려온 아기의 시체를 개가 물어뜯는 장면을 찍은 사진의 설명글을 인터넷에서 찾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사진은 뜨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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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의 얼굴이 부패하여 이빨이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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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일까요? 웃통을 벗은 남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사공 혼자서 저 많은 사람을 날라야 하니 힘이 몹시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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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파는 처녀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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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는 바라나시 사람들... 아니 인도 전역에서 갠지스에 몸을 씻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오니 바라나시인이라고 한정할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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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한쪽은 모래땅으로 홍수 때마다 범람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가 없어서 아무 건물도 없으나, 이쪽은 강 따라 많은 사원 호텔 가트 등이 촘촘히 들어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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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에서 하나 더 볼거리가 있다면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입니다. 빨래를 말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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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 사이에 조그만 꼬마 소녀도 빨래에 여념이 없습니다. 제가 사진 찍는 것을 보고 미소를 머금는 사진은 여기 올리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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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끼어서 부옇게 보이는 갠지스강의 하안에 세워진 수많은 건물들이 여행자의 가슴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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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들이 걷는 길에 사두들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문득 떠오르는 의문입니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불과 10 여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150루피에 온 길을 어떤 한국여행자들은 60루피에 오더군요.  . 녹야원이라는 현판이 선명한 이 절은 한국인 스님이 계신 절입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들러서 일시적으로나마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갖는 곳이죠. 김치와 밥, 그리고 된장국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단, 요리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음식 재료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공주님한테 한국음식 타령만 한다고 타박을 줄 수가 없는 것이 나부터도 인도음식은 내키지 않습니다. 여기서 머무르신 후에는 뒤에 오실 분들을 위해 먹은 것을 채워넣고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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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에서 새벽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쇠똥 건조용 벽입니다. 한가위 송편처럼 손으로 잘 주물러서 저렇게 빚어놓습니다.  자연에서 온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저만큼 자연스럽기도 어렵건만, 아마 몇몇 도시민들께서는 혐오감을 감출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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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의 첫 설법을 하는 석가모니 부다의 좌상: 5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것이며, 박물관의 직원들 설명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처의 상으로 영국 불란서에서도 이 부처상의 본을 떠 갔다는 것입니다. 좌우에서 볼 때의 표정이 서로 달라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는 중생의 고통을 동정하는 슬퍼하는 모습이고, 하나는 열반에 들어 가볍게 미소지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을 약간 손본 것입니다.) 박물관 내에 에어컨이 켜져 있다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아쇼카왕의 석주의 가장 꼭대기 부분입니다. 아쇼카왕의 석주 중간에는 여러 방언으로 사르나트의 그 위치가 부처의 첫 설법지임을 알리는 문구가 써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왼쪽 사자상은 엽서에서 스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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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의 부처님 첫 설법지입니다. 부처님의 탄생지 네팔의 룸비니,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열반에 드신 곳인쿠시나가르와 함께 부처님과 관련된 4대 성지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슬람의 박해로 폐허가 되었다가 아쇼카 석주의 발견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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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르나트의 첫 설법지 녹야원 내부입니다.

붓다는 보드가야에서 득도후 걸어서 라지기르에서 그를 버렸던 다섯 제자를 찾아 250㎞ 떨어진 이곳에 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왕의 사슴 사냥터인 이 녹야원에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을 상대로 8정도(正道)와 중도(中道) 및 여러 깨달음을 설법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초전법륜(初轉法輪, Dharmachakrapravatana)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쇼카 대왕과 사캬(Saka)와 쿠샨(Kushan)왕조의 후원 아래에 그 명성이 최고도에 달했으나, 12세기 이슬람의 침입을 받고 나서는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1834년에 영국의 고고학자인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에 의해 발굴이 되어 인도의 역사에 다시 등장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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