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uba(2015 Jan)

15-9 헤밍웨이와 함께 모히토를-라보데기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봉들레르 2015. 2. 25. 18:13

 

 

쿠바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늘 시가와 칵테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바나의 유명한 바인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 앉아 프랑스의 작가 겸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영화배우 게리 쿠퍼·에바 가드너·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세계적인 명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교유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

헤밍웨이가 특히 좋아했던 술은 모히토(Mojito)와 다이키리(Daiquiri). 쿠바 리브레(Cuba Libre)와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쿠바의 3대 칵테일이다.

그는 사방의 벽과 식탁들이 온통 낙서로 가득한 유명 식당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에 앉아서

모히토를 마시다가 기분이 나면 엘 플로리디타로 옮겨가 다이키리를 주문하곤 했다.

그가 얼마나 칵테일을 좋아했던지, 한 바텐더는 그의 이름을 따서 '헤밍웨이 스페셜'이라는 칵테일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이 두 술집은 헤밍웨이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쿠바 칵테일의 독특한 맛을 즐기려는 외국인들로 언제나 초만원이다.

원래 칵테일은 쿠바의 발명품이 아니지만 20세기 초 미국인들에 의해 소개되면서부터 순식간에 쿠바 전역을 휩쓸었다.

아열대 기후에 다양한 과일, 그리고 세계 최고의 럼주를 생산하는 쿠바가 칵테일 강국이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라보데기따 델 메디오

 

모히토는 럼을 베이스로 민트, 라임, 탄산수 등을 섞어 청량감이 좋은 인기 칵테일이다.

헤밍웨이 즐겨 마셨고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 등 주인공들이 마시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쿠바산 오리지널 모히토는 민트, 설탕, 탄산수, 라임, 클럽 하바나 럼을 넣어 만들어낸다

설탕 – 2스푼, 민트 잎 – 5~6장을 넣고, 기호에 맞게 럼을 넣고 라임을 잘라 넣으면 된다.

간단한 레시피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기술과 장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설탕과 민트를 넣고 으깨어 잔 전체에 향이 풍부하게 돌도록 만든다던지

라임을 댕강 잘라서 넣지 않고 즙을 내어 넣는 등 의 기술이 가미된다면 취향에 맞는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또한 달달한 맛이 좋다면 설탕 더 넣거나 또는 탄산수 대신 사이다를 넣는 방법도 있는데 사이다를 넣는 것이 더 달콤하다.

 

1942년에 개장한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 시인,

1970년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도 많이 다니던 명소다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벽에는 줄 하나 얹을 틈도 없이 전세계 유명인사들의 흔적이 빼곡하다.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에는 단골이었던 헤밍웨이가 남긴 “나의 모히토는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 있다”는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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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deguita.com

 

 

 

 

 

 

아바나 토코로로식당

6시 반

 

벽에 빽빽하게 사진과 글들이 있다.

손님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쇼파에 앉은 여인이 가수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 곳

하바나병원에 입원한 일행의 상태확인을 위해 8시반에 다시 병원으로 갔다.

쿠바의사의 설명을 듣는다.

 

사탕수수로 이어진 인연 쿠바, 요즘 한류 열풍 뜨거워요

낡은 유럽식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카리브해의 진주라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예요.

대문호인 헤밍웨이가 머물며 '노인과 바다' 등을 집필했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죠.

한때 쿠바 경제의 중심이었던 사탕수수 산업은 우리나라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어요.

현재 쿠바에는 약 1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후손이 살고 있죠.

이들의 조상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들이랍니다.

이들은 열악한 사탕수수 농장의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다고 해요.

이들이 모금한 독립운동자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등 독립을 위해 아주 요긴하게 쓰였죠.

더불어 쿠바 정부도 6·25전쟁 때 대한민국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가까웠던 쿠바 관계는 1960년 쿠바가 북한과 수교를 맺음으로써 멀어졌어요. 우리나라와 국교도 단절되었고요.

이는 1959년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과 함께 쿠바가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죠.

냉전 시대는 종식되었지만, 쿠바는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에 물자가 부족해진 쿠바인들은 남은 자원을 아끼고 고쳐가며 사용했어요.

시내를 달리는 오래된 자동차는 경제 봉쇄 전인 1950년대 들어온 미국산 자동차이고,

수백 년 된 낡은 건물들은 독특한 색채로 덧칠하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죠.

이 오래된 자동차와 건물들은 쿠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으로 자리 잡게 됐답니다.

이렇게 지구에서 가장 고립됐던 쿠바에서 요즘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 해요.

많은 쿠바인이 한국어 배우기를 희망하고, 한국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죠.

우리나라와 쿠바 양국 간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단절됐지만, 민간 차원의 경제·문화 교류는 지속적으로 이어진 덕분이에요.

특히 한국 드라마와 K팝 등은 쿠바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인 한국을 알리는 일등 공신이랍니다.

쿠바 내의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우정 클럽'이라는 단체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매달 200여 회원이 만나 함께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고 해요.

앞으로 쿠바와 심리적인 거리는 한결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여요.

지난해 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닫혀 있던 한국과 쿠바 양국 간의 공식적인 수교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지속적인 문화 소통으로 양국 간의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해 보아요.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