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 있었던 곳
지금은 카톨릭의 성지로 바뀌어 논란이 많은 곳 천진암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한강 상류인 팔당면과 조안면 능내리 쪽도 가봤다. 정다산 선생의 고향이고 성장지다.
강 건너편이 퇴촌면 천주교 묘지인데 마주보고 있다. 다산은 아마도 이 동네에서 자라면서 강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거길 가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더 큰 흐름을 이루면서 대도시 서울 쪽으로 흘러가는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다산은 그곳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두 강이 합쳐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굉장히 많은 영감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의 호를 열수(洌水)라고 지었다. 그때 한강을 열수라고 불렀다. 다산이 사용한 많은 호 중 하나가 젊었을 때 열수다.
그걸 보니까 그 강에 대한, 두 물줄기가 큰 흐름을 이룬다는 데 대한 다산의 자부심과 애착, 그가 느꼈던 영감을 알 수 있었다.
그 강 건너편이 바로 퇴촌면인데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이다.
다산은 거기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천진암에서 형제들과 천주교를 배웠던 것이다. 강 건너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을 건너가 천주교를 배웠기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다산은 천주교를 배반하고 살아남았고 큰형 약종은 자신의 진리를 증거하다 순교했다.
강 건너편의 천주교 묘지에는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같은 순교자들이 묻혀있고 바로 건너편에는 다산이 묻혀 있다.
순교자와 배교자의 무덤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도가 참 비극적이면서도
인간의 역사는 영원한 의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그 성지에 묻힌 정약종이나 이승훈 같은 분들이 다 순교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승훈 같은 경우는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약종은 분명한 순교자였던 것 같고.
하나의 강을 끼고 양쪽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대칭 관계,
그런 것들이 또 하나로 합쳐가지고 더 큰 강을 이루면서 미래로 흘러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며칠을 한강가를 떠돌고 살았다. 결국 내가 이번 한강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인간의 희극과 비극은 끝이 없고 인간의 야만과 아름다움이 뒤섞여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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