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Mongol(2012.Aug)

12-7 지붕이 화려한 사원

봉들레르 2012. 10. 8. 07:04

 

 

 

 

 

 

 

안에서 시주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마유주를 한 사발 보시를 한다.

 

 

 

 

남문으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꺾이는 곳에 3개의 전각이 서 있다.

가운데 있는 것이 아쁘타이 사잉 칸의 아들 알탄이 티벳의 5대 달라이라마가 된 기념으로 세운 전각이다.

이곳에는 처녀의 정강이뼈로 만든 피리를 비롯하여 사람의 두개골을 잘라 은으로 장식한 불교 용구들이 있다.

섬뜩한 탕카와 함께 티벳 뵌교의 영향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얕은 지식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건축 양식이 중국·티베트·몽골풍으로 되어 있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건축 기술과 함께 정교함·정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 건설을 주도했던 멘지르라는 장인은 지금도 추앙받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17세기말 만주족의 침입으로 피해가 심했으나 1760∼96년과 1808∼14년 두 차례 복원되기도 했다.  

 에르덴조 사원은 칭기스 칸의 스물 한 번 째 후손인 압테 칸의 주도로 1586년 첫 전각인 ‘조’를 시작으로 건립됐단다.

그러나 청나라의 침략으로 완전히 버려졌다.

이후 찬란했던 몽골 제국의 옛 궁궐 터에서 발견된 석주, 벽돌 등

다양한 건축자재를 사용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불사가 계속돼 지금의 에르덴조 사원이 있게 된 것이다.

귀를 솔깃하게 했던 사실은 건축물에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1586년 에르덴 죠 사원 건물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걸 죠 전각.

대웅전 기와지붕밑 동판

 

지붕은 녹색과 붉은색 기와로 덮여있다.

 

사원의 지붕을 지키고 있는 용머리 모습은 우리나라의 용머리에 비해 투박한 모습이지만,

그 위용만큼은 뛰어나 보여 잡귀 잡신을 물리치는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듯 하다.

 

 

몽골국장의 원형인 중앙사의 국장

 대웅전 문 위에 있는 문양이 지금의 몽골 국기(國旗)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알려진 대로 유(酉)해에 성터를 다지고, 술(戌)해에 지붕을 덮고 해(亥)해에 사원을 세우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양을 새겨 넣었다.

해·달·불꽃·물고기 눈 등이 국기에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이 문양에서 비롯되었다.

 

 좌측

 

 

 

정문으로 들어서자 35세 때의 석가모니 본존불이 순례자를 맞이했다. 좌우 협시불로는 서쪽에 건강을 지키는 불상, 동쪽은 아미타불이다.

삼존불 앞에는 부처님의 네 제자를 형상으로 만든 불상, 그리고 그 앞으로 다시 8개의 불상이 봉안돼 있다.

또 하나 벽에 천개의 불상이 안치돼있다고 해 천불전이라 불리는 전각 ‘조’를 먼저 참배했다

전각 입구 문 동쪽에는 절을 지켜주는 호신불과 서쪽에는 불법을 지키는 여인상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 섬뜩한 모습에 오금이 저렸다. 차마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모습이 너무 괴기스럽다며 팔에 돋은 닭살을 쓸었더니 사원 안내자가 빠른 몽골어로 설명했다. 말인 즉 이렇다.

원래 남성 불상 9개와 여성 불상 1개가 있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악귀를 죽이라고 보냈지만

오히려 그들은 차례로 죽임을 당했다. 하여 마지막에 한 여인만 남았는데 그녀는 악귀와 결혼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악귀가 방심한 틈을 타 죽였다. 그녀의 섬뜩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녀는 악귀의 가죽을 노새 등에 덮은 후에 그 위에 자기가 앉고, 악귀와 자신의 자식을 죽여 입에 물고 돌아왔다.

 전각에는 그 모습 그대로 형상화돼 있다.

불자이고 뭐고 급히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잔인한 여인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했다.

 

 

에르덴 죠 사원에 조성된 전각들은 대부분 2층으로 외부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기와지붕으로 지었지만,

내부는 수많은 탕카(천에 그린 티베트 불화)와 벽화, 그리고 다른 장엄을 이용하여 숲속의 모습이나 동굴의 형태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본당의 건물은 웅장하고 고전적인 인상을 주었지만 그 곁으로 물러나 있는 크고 작은 별채는 단청이 매우 독특하다.

특히 지붕의 선이며 금빛 색감은 한 시대 건축양식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중앙전각인 걸 죠(Gol zuu)만을 완공하였고, 이후에 북쪽전각인 주운 죠(Zuun zuu),

그리고 남쪽 전각인 바롱 죠(Baruun zuu)가 완공되었다. 이후 동쪽으로 수많은 전각들이 세워졌다

 

 

좌측 건물

 

 

 

 

 

 

 

 

 

 

 

 

 

 

 

 

 

 

 

 

 

 

 

 

 

 

이 하라호름은 1889년 아드린체프가 에르덴 조 사원 근처에서 폐허의 흔적을 찾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1890년에야 밝혀졌다.

이때 발굴된 문서에 따르면 1215년과 1268년 큰 화재가 있었으며,

1380년, 1466년 두 차례 중국인에 의해 크게 파손됐다.

1238년에 세워진 왕궁의 규모로 하라호름의 번창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궁전은 ‘위대한 평안의 궁전’이란 뜻의 이름으로 ‘투멘암가’라 불리워지며

객실은 64개의 기둥이 받쳤고, 바닥은 녹유(綠釉)가 칠해진 도판(陶板)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