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Srilanka(2011.Feb.)

4-11 Temple of the Tooth 2(불치사)

봉들레르 2011. 2. 21. 15:01

 

불치사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는 불멸기원인 BC. 543년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다비하면서 수습한 것이 전해졌다고 한다.

AD 4세기 인도 남부 오릿사주의 카랑카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실론으로 모셔왔다. 부처님 치아사리를 처음 모신 곳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다.

이후 1590년 비말라 다르마 수리야 1세 왕이 캔디에 사원을 짓고 사리를 모셨다. 이후 나렌드라 싱하 왕이 사원을 둘러싸는 해자를 파고 건물을 확장했다.

지금의 불치가사 사원이 사원을 싸고 있는 2중 구조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각 국에서 보내온 불상이 모셔져있는 법당

타일랜드에서 기증한 황금불상이 있는 뒷편 건물로 들어서니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특별히 앞쪽으로 나와서 부처님전에 꽃을 바치라고 커다란 연꽃까지 담은 공양물접시를 준다.

 

보시를 했다

각 나라에서 불상을 보내왔다는데 왼쪽에 검은 머리를 한 불상이 우리나라에서 보내 것이란다.

그래서 특별히 절을 하게 했나?

 

정면에서 본 불상들

불상앞에는 부처의 탄생에서 열반까지의 많은 그림들이 있어 유럽의 화랑을 연상케한다.

 

 

 

 

 

 

옆 불당에서 나와서

2층으로 올라가니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우리도 줄 끝에 서있다가 보니 줄이 줄지가 않는다.

아마도 서 있던 줄에서 앞에 있는 참배객들 중에 몇명은 이 방에서 앉아서 기다린다.

붉은 융단이 깔리고 사방이 화려한 벽화로 장식돼 있는 2층 홀은 비교적 넓다.  

    문지방은 금박으로 장식된 문양이 아로새겨져있어 밟아서도 안 된다.

온갖 보석들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문과 앞서 보았던 상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아 아치가 눈에 들어온다.

한 눈에 보아도 저 문 너머에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색으로 도금된 저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려

  불치사리가를 알현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지금도 치아사리함을 열기 위해서는 4개 지방에 떨어져 있는 장관 4명이 

각자가 가진 열쇠 4개를 함께 돌려야 불치사리함의 문이 열린단다

 

퍼온사진으로 감상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리함은 높이 약 60센티미터에 다고바 형태의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리함은 모두 일곱겹으로 돼 있는데 제일 바깥쪽의 사리함만 보일 뿐이란다.

사리함은 화려한 목걸이와 장신구 등으로 가득 뒤덮여 있는데

옛 왕비들이 자신들의 장식구를 치아사리에 공양 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황금 띠로 중간 중간을 엮은 검은색 머리카락 다발이 보이는데 신심이 지극했던 한 왕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금실로 엮어 치아사리에 공양올린 것이라고 한다

2중으로 된 사리함이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것은 8월에 열리는 사리 이운 축제인 에살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 때뿐이다.

황금으로 만든 연꽃 좌대에 모셔진 치아사리를 코끼리에 태워

캔디 시내를 돌며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축복을 내린다.

속설에는 지금 모셔진 사리는 모형이며 페라헤라 때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리도 모형이란다

축제장면

이렇게 많은 참배객들이 있으니 불치사리를 이 밤이 가기전에 볼 수나 있겠나?

다시 1층으로 내려왔을 때는 관광객도 없고 북을 치던 사람들도 이젠 지친모양이다.

이젠 조용해서 불치사 내부 입구의 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아치형 입구

밤8시가 다 되어서 불치사 관람이 끝났다.

 

가로등도 침침한 가운데 많은 관광객에 떠 밀려서 들어갔다 나오니 방향감각이 상실이 되어 길을 잘 못들어 조금 혜매다가 밴을 찾았다.

날씨 좋은 낮에 불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