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2024년

개미, 말벌, 귀뚜라미들도 식물의 번식에 일조

봉들레르 2024. 4. 8. 05:46
혈근초 씨앗을 옮기는 장다리개미

숲에 가면 발걸음을 조심해야겠다. 개미가 밟히면 그들뿐 아니라 식물도 씨앗을 퍼뜨리지 못해 대가 끊기기 때문이다.
최근 꽃가루받이와 상관없던 개미와 말벌, 귀뚜라미들도 식물의 번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다.
동물 대신 씨앗을 퍼뜨려 식물의 번식과 생태계 복원까지 돕는다는 것이다.
 
◇씨앗에 달라붙은 개미용 젤리
식물이 번성하려면 씨앗을 어미 나무에서 떨어진 먼 곳으로 퍼뜨려야 한다.
그래야 어미 자식 간에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서식지도 넓힐 수 있다.
사이언스지는 지난 11일 장다리개미가 식물의 씨앗이 멀리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개미는 씨앗을 먹는다. 하지만 북미나 호주의 삼림이나 남아프리카의 관목림에서 일부 식물은 씨앗에 다른 미끼를 붙여 개미에게 준다.
마치 민달팽이가 앉은 듯한 모습의 ‘엘라이오솜(elaiosome)’이다.
그리스어로 기름을 뜻하는 엘라이온과 덩어리를 의미하는 솜이 합쳐진 말이다.
개미는 씨앗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 애벌레에게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엘라이오솜을 먹인다.
남은 씨앗은 개미굴의 쓰레기장에 두거나 밖으로 내다 버린다. 이 과정에서 씨앗은 먼 곳으로 퍼질 수 있다.

지방질의 엘라이오솜(흰색)이 붙은 씨앗을 옮기는 장다리개미

개미는 물리적으로 씨앗을 옮길 뿐 아니라 항생제로 씨앗에 묻은 병원균을 없애기도 한다. 미국 테네시대의 찰스 크위트 교수 연구진은 지난 3일 온라인으로 열린 미국생태학회에서 개미가 물고 가 퍼뜨린 씨앗은 표면에 있는 병원균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 있었다고 밝혔다. 개미가 애벌레나 집을 살균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이 씨앗에도 도움을 준 것이다.
이번 학회에서 과학자들은 숲을 한번 개간하면 씨앗을 퍼뜨리는 개미가 사라져 삼림을 복원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홀든 수목원의 캐티 스투블 박사는 수십년 전 숲을 밀었다가 다시 나무를 심은 곳에는 씨앗을 퍼뜨리는 개미 대신 지렁이가 번성한다고 밝혔다. 지렁이는 낙엽을 분해해 개미가 숨을 곳을 없앤다. 개간했다가 복원한 숲에는 달팽이도 많다. 이들도 씨앗에 붙은 엘라이오솜을 좋아하지만, 그 자리에서 먹어치워 씨앗을 퍼뜨리지 못한다.
 
◇바람 대신 말벌이 씨앗 공중 전파
민들레처럼 작은 꽃씨는 바람에 날려 퍼지고, 사과처럼 큰 씨앗은 짐승에게 먹혀 나중에 배설물로 먼 곳까지 간다.
하지만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큰 씨앗도 공중으로 퍼질 수 있다.
중국과학원 쿤밍식물학연구원의 가오 첸 박사 연구진은 아시아에 사는 등검은말벌이 약재로 쓰이는
백부과(科) 식물의 씨앗을 물고 집으로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말벌이 꽃에서 씨앗을 따는 모습

백부의 씨앗에도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다. 말벌은 이것을 애벌레에게 먹인다. 말벌은 씨앗을 평균 110m까지 옮겼다.
날아가는 도중에 씨앗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는 땅에 있는 개미가 바통을 이어받아 옮긴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엘라이오솜이 단순히 영양분이 많다고 말벌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연구진은 말벌 더듬이에 엘라이오솜에서 나는 냄새에 반응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앞서 연구에서 엘라이오솜에 있는 단백질이나 다른 영양분은 개미의 혈액 성분과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포식성 곤충인 말벌은 꽃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개미를 물고 집으로 날랐던 셈이다.
 
◇배설물로 씨 퍼뜨리는 귀뚜라미
일본에 사는 귀뚜라미와 꼽등이는 바람에 날리는 작은 씨앗을 배설물로 퍼뜨린다.
일본 고베대의 스에쓰구 겐지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진화 레터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귀뚜라미가 야쿠시마란의 열매를 먹고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리는 과정을 발표했다. 야쿠시마란은 일본 야쿠시마섬에서 자라는 난초이다.

야쿠시마란의 열매를 먹어치우는 귀뚜라미

다른 식물과 달리 난초는 잎에서 광합성을 하기 전 초기 발생 단계에 균류(菌類)에서 영양분을 얻는다.
따라서 난초 씨앗은 균류가 많은 곳으로 가야 자랄 수 있다. 보통은 가벼운 씨앗에 공기주머니나 실이 달려 바람에 잘 날려간다.
반면 야쿠시마란은 큰 나무 아래에서 땅에 가까이 붙어 자라다 보니 씨앗을 날려 보낼 만한 풍속을 얻기 어렵다.
야쿠시마란은, 대신 땅을 기어다니는 귀뚜라미가 좋아할 열매를 미끼로 줬다.
단단한 목질로 둘러싸인 씨앗은 귀뚜라미의 배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된다. 귀뚜라미는 날지 않지만 잘 뛰어다니기 때문에 바람보다 씨앗을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조선일보
 
 

개미와 풀떼기

풀떼기들은 남들처럼 날개도 갈고리도 끈끈이도 만들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육질 좋은 열매를 만들어 동물을 매개로 영역을 넓힐 재주도 없다.
이동 수단이 전혀 없는 풀떼기가 포도시 짜낸 좀꾀가 바로 몸보시다.
결국 씨앗 껍데기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유질체(elaiosome)를 살짝 발라놓는다.
이는 지방, 단백질, 비타민이 풍부한 종합 영양제이다.
결론적으로 씨앗에 유질체를 입혀서 개미를 유인,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전략이다.

유질체(elaiosome)를 함유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씨앗들(출처 : Wikimedia Commons) 엘라이오솜은 oil을 뜻하는 그리스어 'ělaion'과 body를 뜻하는 그리스어 'sǒma'의 합성어로,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방체를 말한다. 개미는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는 종자를 개미집으로 물어가 이것을 떼어서 애벌레의 먹이로 이용하고, 남은 종자는 개미집 내부의 쓰레기장이나 집 밖의 모래 언덕 또는 개미 군체의 영역 경계로 내다 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개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씨앗을 물고 집 안으로 나른다.
애먼 놈들 손을 탈세라 창고 안 뒤주 속에 깊숙이 감추어 두고, 번갈아 가며 망을 본다.
검부러기 하나 없이 말끔하게 걷어내고 또다시 닦는다. 그래도 미더운 나머지, 손발이 닳도록 비비고 털고 훔쳐낸다.
건너편에서는 입으로 이물질을 물고 빨고 핥느라 여념이 없다. 행여 상하지 않을까,
환기통마다 열어두고 온몸으로 부채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듯 금이야 옥이야 처쟁인 씨앗은 오로지 아기 전용 영양식이다.
뉘라서 감히 손을 댈 엄두를 내겠는가? 써빠지게 일만 하던 녀석들은 밤새 뜬눈으로 뒤주를 지키다가 날이 새면 다시 먹이 사냥을 나간다.
그게 일개미들의 일상이다. 너야말로 풀떼기의 분신이로구나, 움직이는 풀떼기....

애기똥풀 종자의 유질체를 운반하는 개미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는 蟻(개미 의) 자이다. 虫(벌레 훼) 자와 음을 나타내는 義(옳을 의) 자의 합성어이다.
예로부터 개미의 됨됨이를 의롭고 선량하다고 보았음 직하다. 물론 개중에는 놀고먹는 고등룸펜도 있다.
어딜 가도 그런 놈은 있게 마련이니 마음에 둘 까닭은 없다. 아무튼 손발은 물론 날개도 없는 씨앗을 널리 퍼뜨려 주는 이가 개미들이다.
풀떼기들에게 개미는 생명의 은인이다.
개미와 풀떼기들의 공생은 연구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과제가 되기도 한다.
테네시 대학의 생태학자 찰스 크윗(Charles Kwit)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8월, 미국 생태학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그들은 장다리개미 등 개미들이 체내에 항균 물질을 지니고 있는데 주목했다. 개미들은 이것을 통해 자신과 동료들의 몸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편, 연구팀은 꽃생강‧혈근초‧깽깽이풀의 씨앗 속에는 여러 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겨례

혈근초(血根草) 씨앗(사진 : cotinis) 직경이 약 2.5mm인 혈근초(血根草) 씨앗을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한 것으로 종자 측면에 있는 다육질의 젤라틴 같은 구조는 개미에게 매력적인 엘라이오솜이다.
혈근초는 북미 동부가 원산지인 다년생 초본으로 영어명은 ‘Bloodroot’이다. 뿌리나 잎 또는 줄기에 상처를 주면 붉은빛이 나는 즙이 나온다. 그 수액의 색깔로부터 혈근초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찍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혈근초의 다양한 약효를 이용해 전통 의약품으로 기관지염과 천식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질병 치료에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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