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Bangkok(2023. Nov)

3-1 끔찍한 기록 제스전쟁 박물관(JEATH War Museum)

봉들레르 2023. 12. 3. 10:57

06:30 숙소 출발

Bts로 Asok역->National Stadium역 이동 (35x2=70밧, 토스gln)

 

OneSiam Skywalk

투어미팅 전 2번출구에서 아메리카노(45x2=90밧, 토스gln)

07:30가이드(Suntaree Ratanagraisri)와 일행(총9명, 프랑스,독일,네덜란드,말레이시아) 만나 전용차량으로 출발

08:35~08:47 휴게소

2시간 반이 걸려 10:00에 깐짜나부리에 있는 제스 전쟁박물관 도착

포로 수용소를 재연해 만든 야외 박물관이다.
사진, 그림과 각종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당시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다.
JEATH는 철도건설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일본(Jepan), 영국(England),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태국(Thailand), 네덜란드(Holland)의 앞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건설기간 : 1942년 9월 16일 ~1943년 10월 17일
"죽음의 철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일본 제국이 군대와 무기의 수송을 위해 건설한 길이 415km의 철도이다.
당시 태국 방콕 버마국 양곤을 연결하고 있었으며, 일본 측에서 부르던 명칭은 태면련접철도(泰緬連接鉄道たいめんれんせつてつどう, 태국-미얀마 연접철도선)이다.
연합군 전쟁 포로와 끌려온 민간인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했다는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최대 약 25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규모의 연합군 포로들은 건설 내내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철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약 10만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당시 공사 현장에서는 “枕木1本、死者1人(받침목 하나에 사망자 한 명)”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착공시점인 1942년 9월 당시에는 버마방면군(緬甸方面軍)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일본 육군 남방군 지휘하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사중인 1943년 3월경 버마방면군이 창설되었는데, 당시 버마방면군 초대사령관은 가와베 마사카즈로서, 
가와베 마사카즈는 이후 죽음의 철도 완공시까지 공사를 지휘하였다.
운행 구간은 태국의 농 플라 둑(Nong Pla Duk)역에서 버마국의 탄비류자얏(Thanbyuzayat)역까지 였다.

짧은 비디오를 보고

 본관은 포로들이 태국 수용소에서 강제로 살도록 강요받은 오두막을 대나무로 재건축한 것으로, 당시의 사진, 미술품, 신문 기사 등이 들어 있다. 방은 아주 작은 공간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는 한 줄로 늘어선 얇은 대나무 칸막이였는데, 각 사람이 잠을 잘 수 있도록 2.5m가 주어졌다. 

 

River Kwai

 

Luang Phor Wat Tai 사원

 
 

 

퍼온 사진

퍼온 사진

이 때 죽은 전쟁포로 묘지가 3군데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콰이강의 다리 약 5㎞ 못미쳐 있는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Kanchanaburi War Cemetery)'이다.
여기엔 영국, 호주, 네덜란드 및 캐나다 군인 등 6,982명이 안장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포로가 죽었으니 묘지의 규모도 방대하고 조경이 태국식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다음은 3,617명이 묻혀 있는 미얀마의 '탄뷰자야트(Thanbyuzayat) 묘지'이고
가장 작은 규모가 1,750구가 안치된 '충카이(Chung Kai) 묘지'이다.
충카이 묘지는 콰이 강의 다리 서쪽 편 철로 주변에 각 나라별로 묘소 공간을 할당하여
기념비 등을 세워놓고 추모하고 있으나 한국인 기념비를 찾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