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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악매(綠萼梅)

봉들레르 2021. 3. 8. 07:28

꽃받침과 줄기가 녹색을 띄는  “녹악매화”는 보기 드문 품종이다.

 

청매화[綠萼梅]  

       [宋] 왕지도(王之道) / 김영문 選譯評 

 

 

윤기 나는 천연 옥이

미세하게 향기 내며

 

담담하게 화장하고

동풍에 몸 기울였네

 

하지만 꽃샘추위

여전히 사납지만

 

새벽 창에서 그래도

초록 치마 입어보네 

 

天然膩玉細生香,

斜倚東風佇淡妝.

可是春寒猶料峭,

曉窗猶試綠羅裳.

 

 

청매는 가지와 꽃받침이 청록색이고 꽃은 흰색 또는 청백색이나 녹백색이다.

매우 청신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꽃받침이 청록색이므로 녹악매(綠萼梅)라는 이름도 많이 사용한다.

이 시 녹악매에서 시인은 가볍게 화장한 미녀가 백옥 같은 얼굴로 초록색 비단 치마를 입고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며 봄바람에 기대섰다고 비유했다.

둘째 구 저담(佇淡)은 글자 순서를 바꿔 담저(淡佇)로 더 많이 쓰인다.

평측을 맞추기 위해 순서를 바꾼 듯하다. 화장이 옅고 정숙(靜淑)하다는 뜻이다.

 

셋째 구 요초(料峭)는 산이 자못 가파르거나 추위가 꽤 사납다는 의미다.

마지막 구 시(試) 자가 오묘하다. 지금도 중국 옷가게나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좀 입어 봐도 될까요?”

“좀 신어 봐도 될까요?”라고 물을 때 보통 “커이스스마?(可以試試嗎?)” 또는 “스스, 커이마?(試試, 可以嗎?)”라고 한다.

초록색 비단 치마를 시험삼아 입어본다고 했으므로 ‘새로운 시도’라는 뉘앙스가 은근하게 내포되어 있다. 

 

보통 매화는 백매, 홍매, 황매 등인데 이런 부류와 다른 초록색 비단 치마를 입고

나름의 특색과 독자성을 추구한다는 어감이 드러난다.

송나라 주익(朱翌)도 같은 제목의 시 「청매화(綠萼梅)」에서 “부화뇌동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일가 이뤄,

청록색 치마 입고 물가에 홀로 섰네(不肯雷同自一家, 靑裙獨立水之涯)”라고 읊었다. 

 

 

탐매(探梅)

“…마당을 걸어가니 달이 사람을 쫓아오고/ 매화 옆을 걸어 돌며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완전히 일어나길 잊었는데/ 향기는 옷에 가득하고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하네…”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쓴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陶山月夜詠梅)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퇴계 선생은 남달리 매화를 아꼈다. 42세부터 세상을 떠나던 70세까지 모두 72제(題) 107수의 매화 시를 썼는데

이 가운데 62제 91수를 손수 추려 ‘매화시첩(詩帖)’이라는 책으로 묶었다. 우리나라 문인과 학자들 중에서 매화를 주제로 시집을 만든 이는 퇴계 선생이 유일하다고 한다.

퇴계 선생은 매화문양이 들어간 벼루와 먹을 사용했고, 매화를 감상할 때 사용하던 도자기 의자에도 같은 문양을 새겼음은 물론이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매개로 한 러브 스토리도 남겼다.

그가 48세에 충청도 단양 군수로 부임했을 때 18세 관기(官妓) 두향이 선생을 흠모했다.

두향은 선생이 매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팔도를 수소문해 꽃 색깔에 초록빛이 감도는 ‘녹악백매’ 한그루를 선물했다.
이후 20여 년간 선생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두향은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단양에서 안동까지 나흘을 걸어가 문상한 후 돌아와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퇴계 선생은 세상을 떠나던 날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는데 두향이 선물한 그 매화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