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Myanmar(2019 Jan)

11-1 제2도시 만델라이(Mandalay)로

봉들레르 2019. 5. 16. 17:29


06:30 호텔 조식

07:30 JJ Express 버스 픽업










무사고를 비는 꽃


마치 포탄처럼 생긴 걸 버스에


09:00~13:00 JJ Express Bus로 만달레이(Mandalay) 이동

















































휴게소

이동 중 휴게소 커피2, 녹차1(7,000)


의자가 나무로 깎은 손모양이다

커피잔도 특별나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13:00 만달레이 Kywesekan Bus Station에서 택시 기사 밍우(Myint Oo) 만나 호텔로








Hotel Aurora

13:40 숙소(Hotel Aurora) 체크인(벨보이 팁)


평점이 9.2이면 엄청나게 높은 점수다


미얀마 중부에 있는 만달레이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인 따웅 왕조의 수도였으며 양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특히 만달레이는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무역이 활발하다.
만달레이 시내의 수많은 차량들은 최근 본격화 되고 있는 미얀마의 경제발전을 느끼게 한다.
무역의 도시 만달레이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20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인도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이곳은 아난존자가 다녀갔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래서 일까. 특히 만달레이에는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다.
1000 명이 넘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마하간다웅 사원과 미얀마 3대 생불사찰인 마하무니 사원, 5차 경전 결집 장소인 쿠도도 파고다,
부처님과 아난존자가 다녀가셨다는 만달레이 힐 사원 등에는 여법한 생활을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자하는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마음에는 불심을, 얼굴에는 미소를 담고 사는 스님들의 존재는 미얀마를 살아 있는 불교 성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불교신문



만달레이는 양곤에 이어 미얀마 제2의 수도이다.

양곤은 항구 도시와 행정 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만달레이는 중국과 국경지대로 미얀마의 경제 구조상 아주 중요한 무역 통로로 발전하여 왔다.

공파웅 왕조의 왕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아직도 당시의 궁전터가 남아 있다.

만달레이는 중국 국경이 가까운 관계로 화교가 많이 살고 있으며 내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향으로

산악 민족과 기타 소수민족들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1857년 민돈왕에 의하여 조성된 만달레이는 불교적 설화를 바탕으로 도읍지를 결정하고 건설하게 되었다.

설화에 의하면 만달레이의 궁전 뒤편에 조그마한 산이 있는데 이곳에 부처님이 다녀가시며

내가 열반한 후 2,400년이 지나면 이곳이 불교 최대의 도시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물론 다분히 지어낸 전설이지만 왕도로의 결정을 하기 전에 불교를 믿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당위와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민돈은 1859년 이 도시와 만달레이 성을 지으며 이전의 수도인 아마라뿌라로 부터 15만명과 함께 1861년 천도를 감행한다.

하지만 얼마 후 이 도시는 얼마 사용도 못하고 영국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며 그들에게 물려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