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n abroad/동유럽

한달 쯤 살고싶은 크로아티아 부둣가 마을 로빈

봉들레르 2015. 11. 20. 22:35

로빈, 이스트리아의 로맨틱 스타 - 뚜르드몽드

 

로빈에 가보지 않고서는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게 아니라네

 

로빈. 이름마저 멋진 남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도시.   로빈은 기대감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황홀한 외모로 유혹한다.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의 매력들이 적절하게 섞여있으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필요도 없겠다.

인구 1만 4천 명의 작은 몸집으로 태양이 계절을 집어삼키는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면

마치 세상에 단 하나의 공간만 존재하는 듯, 엄청난 인파가 이스트리아 서부 해안의 작은 도시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사실 한여름 관광객에게 점령당하는 로빈의 진짜 정체는 어업항이다.

아침이면 그물을 손질하는 늙은 어부와 물고기 하나만 던져달라고 졸라대는 갈매기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곳.

크루즈와 큰 배들이 드나드는 북쪽의 개항과 작은 고깃배와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남쪽의 항구에 가면 지중해 어촌만의 풋풋함이 그득하다.

로빈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건 달걀 모양의 반도 안에 성냥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주홍빛 지붕의 집들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의 찹쌀떡 같은 궁합이다.

 

 

“언덕 위에 새하얀 종탑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로빈을 좋아했을까?”

산처럼 봉긋이 솟은 구시가지 한가운데 터를 잡은 성 에우페미아 성당(Church of St Eupemia)은 로빈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다.

1736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된 뽀얀 민낯의 우아한 성당은 그 큰 규모가 18세기에 부흥했던 로빈의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곁을 지키는 종탑은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의 것을 그대로 따라서 만들었다.

60미터의 곧은 종탑은 어쩌면 심심했을지도 모르는 로빈의 실루엣에 숨을 불어넣는다.

저 멀리 서서 성당을 손바닥으로 슬쩍 가려보니 누군지 몰라도 여기에 종탑을 세우기로 결정한 건 참 잘한 일이더라.

로빈의 풍경은 성 에우페미아의 성당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완성되니까.

 

정상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 그리시아

 

 

 

물보다 와인을 좋아하고 젤라또를 입에 달고 살며,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유난히 빛나는 치아로 호탕하게 웃는 사람들.

크로아티아어도 이탈리아어처럼 노래하듯 말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탈리아 땅을 밟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구시가지를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로빈의 매력 중의 으뜸은 베네치아에 못지않은 골목 헤맴이다.

과거 작은 땅 위에 가능한 많은 집들을 짓기 위해 다닥다닥 빈틈없이 공간을 활용하다 보니,

달걀 모양의 구시가지안은 일부러 빠져나가지 못하게 설계해놓은 미로같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광장도 좁거니와 골목들은 거미줄처럼 엉켜있고,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마냥 가파르지 않은 길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애정 하는 건 이 미치도록 빠져나갈 수 없는 골목길의 반지르르한 돌바닥이고,

어지럽게 휘날리는 보송보송 빨래들이며, 페인트가 벗겨나간 낡은 창문이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누군가의 앞마당처럼이나 정겨운 카페들이다.

정처 없이 헤매다가 어디든 털썩 주저앉아도 마냥 재밌고 로맨틱하기만 하니 매일 밤 퉁퉁 부어버리는 발바닥에게는 미안하지도 않다.

하나같이 예쁘지 않은 골목이 없지만, 누구나 1순위로 찾는 길은 하나 있다.

 

 

발비 아치(Balbi Arch)부터 성 에우페미아 성당까지 길게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그리시아(Grisia).

두부처럼 큼지막한 돌들이 만드는 하얀 계단 양쪽으로 현지 예술가들의 작품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길 전체가 오픈 갤러리나 다름없다.

근처 바닷가에서 주운 조약돌을 엮어 만든 목걸이부터, 로빈의 풍광을 손으로 그린 마그넷, 흐바르 섬에서 가져온 라벤더,

유쾌한 글귀가 적힌 벽걸이 등 지갑을 열고 싶은 쇼핑품목들을 나열하자면 네버엔딩이다.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그리시아에선 열 걸음 옮기는 데 10분이 걸릴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간다.

 

 

일광욕은 로빈 스타일로!

길의 끝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가끔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낭떠러지 너머의 바다를 마주하기도 했다.

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바다는 거친 절벽이고 바위뿐인 해변을 끼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늘 저마다의 방식으로 로빈의 바다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멋있고 이국적일 수가 없는데, 실제로 멋 부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비닐봉지에 비치타월 하나만 달랑 넣고 와서, 태양 아래 말리는 미역처럼 하루 종일 널려있는 게 그들이 하는 전부다.

햇볕에 몸을 태우고,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며 더 없는 평화로움을 누린다.

유일한 소음은 다이빙하는 사내들뿐. 그리 높지 않은 바위,

꽤 깊은 수심과 약한 조류를 가진 로빈의 바다는 용기 있는 사내들을 맘껏 품에 안아준다.

로빈은 14개의 초록빛 섬으로 구성된 군도이기도 하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종이 간판을 걸고 호객하는 투어데스크가 여럿이라 밥 한 끼 값이면 보트를 타고 주변의 섬들을 간단하게 오갈 수 있다.

그중에서도 로빈에서 1.9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붉은 섬이라는 뜻의 츠르베니 오토크(Crveni Otok),

그리고 스베타 카타리나(Sveta Katarina)와 스베티 안드리야(Sveti Andrija)가 데이 투어로 인기 있다.

한낮에만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해질 무렵의 바닷가는 또 다른 천국이다.

내가 밤마다 만났던 여행자들은 낮 동안 바닷물에 축 젖은, 골목 탐방으로 땀에 망가진 행색을 재정비하고 다시 같은 바위 위에 등장했다.

남자들은 셔츠를, 여자들은 원피스를 입고 향수를 뿌리고서 나타났다.

대낮의 일광욕과 같은 스타일로 그들은 돌덩이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노랗게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멋지고 이국적일 수 없더라. 로빈.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건 지금 바로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