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Peru(2014 Dec)

11-2 리마 시내

봉들레르 2015. 2. 18. 14:34

 

 

10시반

산마르틴광장과 페루 독립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산마르틴 장군동상

광장은 시민의 휴식처로 낮에는 인파로 붐비고 있다.

예전에는 관광안내소, 여행사가 광장 주변에 집중되어 관광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거의 신시가지의 산이시드로지구와 미라플로레스지구로 이전해버렸다

페루 건국의 상징인 산마르틴광장에서는 종종 콘서트도 열린다.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1778. 2. 25~1850. 8. 17)
아르헨티나의 장군이며 페루의 정치가이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첫번째로 칠레의 독립을 실현시켰으며, 그 여세를 몰아 칠레의 함대를 보강하여

스페인 군대로부터 페루 리마를 함락시켜 페루의 독립을 선언하고

'페루의 보호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페루의 군사,정치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북부해방의 지도자였던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해방의 영웅으로 숭앙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국민의 아버지로 높이 추앙받고 있다.

그를 기린 ‘해방자 산 마르틴 장군 훈장(Orden del Libertador San Martín)’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다.

산마르틴 광장과 아르마스 광장을 이어주는 리마의 명동으로 불리는 유니온(La Union ) 거리

 

아르마스 광장으로

 

대통령 궁

 

 

 

 

아르마스 광장 대성당

 

대성당 정면

대성당 내부

 

 

 

잉카문명을 멸망시킨 피사로의 유해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를 점령하고 잉카제국의 기능과 부(富)를 모두 에스파니아왕에게 바쳤다.

1535년부터 새 수도 리마(Lima의) 건설을 시작하였으며,

무학문맹(無學文盲)이면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한 피사로.

한 개인의 탐욕이 한 제국을 멸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역시 동료와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당하였다

 

Municipal Palace of Lima

 

 

리마 아르마스광장

 

대주교의 궁전 Archbishop's Palace of Lima

가운데 노란건물이 Casa del Oidor

 

 

Archbishop's Palace of Lima

 

 

 

 

우측 Headquarters of the Caretas magazine.

 

Headquarters of the Caretas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