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taly(2014.Feb)

6-2 교황의 피신처 오르비에또

봉들레르 2014. 3. 26. 00:23

 

깊이 62m로 땅을 파서 만든 찬 파트라치오 우물 오르비에토 명소다.

 

산 파트리지오 우물(pozzo di San Patrizio)

산 파트리치오 우물 입장료 25.5€

 

산 파트리지오 우물(pozzo di San Patrizio)

로프베이(funicolare 푸니코라레)의 종점에 있는 카엔 광장(Piazza Cahen) 가까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 파트리지오 우물’이 있다.

유명한 이 우물은 법와 크레멘테 7세 (줄리오 데 메디치)의 명에 의해 제작되었다.

당시의 크레멘테 7세는 1527년의 ‘로마 약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오르비에또로 피난했고 공격에 대비해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우물을 팠다고 한다.

설계는 피렌체의 건축가 안토니오 다 산가로 일 조반네에게 맡겨졌다.

우물이 완성된 것은 공사 개시로부터 10년후 1537년 법왕 파올로 3세(알렉산드로 파르네제 디 로마)의 시대이다.

응회암을 파낸 이 우물은 깊이 62미터, 폭 13~4미터, 248단의 두 개의 나사 모양의 계단이 수관 주위를 두르고 있고

한 개는 물을 퍼서 떨어뜨리는 용으로, 다른 하나는 물을 지상으로 운반하는 용으로

두 개의 계단이 부딪히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62미터나 되는 우물을 내려가는 경험은 희귀하고 밑에서 바라보는 것은 실로 환상적이다.

 

옛날 전쟁을 대비해서 마을에 깊은 우물을 파놓았는데 창문이 70여 개 뚫려 있어 독특하다.

또 이중 나선형 계단 248개가 아래까지 이어져 바닥 부분까지 내려갔다 올 수 있다.

어두컴컴한 깊은 우물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 색다르다.

 

제일 밑바닥

많은 동전들이 있다.

 

 

 

다시 올라간다.

출구

 

출구쪽에서 보는 전망도 좋다.

 

 

 

높은 산위에 도시를 형성하여 살게 된 이유는 .
하나는 중세시대 흑사병을 막기 위해 지대가 높은 곳으로 이주
두번째는 전쟁시 방어를 목적으로 절벽위에 도시를 형성
서로마제국의 멸망이후 도시국가형태로 집단적으로 거주,

도시국가간 전쟁이 잦음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높은 지대 선택했다.

우물에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들려서

우물 앞 매점 빵, 맥주 11.4€

나무를 카페안에 살려서 만들었다.

 

산악열차 타는 역앞에서 치비타를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지하동굴은 생략했다.

지하 동굴(under ground)

오르비에또의 대지 아래에는 거대한 지하동굴이 뻗어있다.

옛날부터 오르비에또의 토지를 형성하고 있는 응회암은 궁전, 교회, 주거 등의 건축 자재로 이용되어 왔다.

이 때문에 기원전의 에트르리아 시대부터 지하에 동굴이나 통로, 터널 등을 만들어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다른 하나의 마을을 형성해 왔다.

동굴에는 우물이나 곡식을 저장하는 저장고, 가구를 수리하는 방, 동물의 사육방 등도 만들어져

수천년이나 걸쳐 만들어진 동굴은 오르비에또의 지상의 마을보다 거대하다고 말해지고 있다.

현재는 두오모 옆 몇 군데에서 지하 동굴을 탐색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