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Laos(2013.Feb.)

라오스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

봉들레르 2012. 10. 12. 22:41

라오스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

150개 고찰 간직한 옛 수도

   
▲ ‘인생의 나무’ 모자이크 벽화가 유명한 왓 시앙 통의 본당인 심(Sim)법당 전경.

라오스는 동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태국, 서쪽과 북쪽으로는 미얀마에 막혀 있다.

이 때문에 인도차이나반도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불린다. 그렇다고 평야가 많은 것도 아니다. 메콩 강이 국토의 중간을 가로질러 흐르지만, 국토의 90%가 산악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보니 라오스는 은둔의 땅으로 자리하면서 인접국가에 비해 비교적 늦게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라오스가 통일국가로 발전하면서 라오스를 상징하는 신성한 불상 두 구가 이운됐다.
이 불상으로 말미암아 라오스는 ‘독립국가 라오스’로 존재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신성한 불상은 라오스의 역사이자 종교요, 라오스인들의 자긍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두 구의 불상은 각각 다른 지역에 안치, 지역을 구분하는 요소가 되었다. 첫 번째가 통일왕조가 들어선 초기 도시 루앙 프라방이고, 두 번째가 후기 수도이자 지금의 수도인 비엔티엔이다.

초기 수도 루앙 프라방을 상징하는 불상이 프라방 불상이라면, 비엔티엔을 상징하는 불상은 에메랄드불상이다. 프라방 불상이 안치된 루앙 프라방은 1353년 파 응움(Fa Ngum) 왕이 건국한 라오스 최초의 독립왕국 란 창(Lan Chang)의 수도였다.

왕국이 건설되기 전까지 라오스에는 토속신앙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어 불교가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란 창 왕국이 건설되면서 라오스에 불교가 뿌리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불교국가를 건설한 파 응움은 앙코르 왕국에 피신해 있던 라오스 왕자와 앙코르 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랐으며 그곳의 공주와 결혼했다.  이에 앙코르 왕은 사위인 파 응움 왕에게 황금으로 만든 대형 불상을 선물하였는데, 이 불상이 바로 프라방 불상이다.

그러나 왕국초기에는 이 불상을 루앙 프라방까지 이운하지 못하고 비엔티엔에 안치했다. 이후 불교 중흥의 왕으로 불리는 비쑨 왕(Vixun, 1501~1520)이 1512년에 이 불상을 수도로 옮겨오면서 비로소 루앙 프라방은 정치의 중심지이자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까지도 수도의 이름은 므엉 쓰와(Muang Swa), 므엉 씨앙 동(Muang Xieng Dong), 므엉 씨앙 통(Muang Xieng Thong) 등으로 불렸는데, 프라방 불상이 안치되면서 ‘큰 황금 불상’이라는 뜻을 가진 루앙 프라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루앙 프라방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왕국의 수도로서 번성하였는데, 특히 포티사랏 왕(Phothisarat, 1520~1547) 재위 시에는 새롭게 도시를 설계하면서 수많은 사원이 건설되었다.  지금 루앙 프라방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사원들이 이때 건설된 사원들이다. 도심의 중심부는 주택가보다 사원이 많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불교사원이 되었다.

그러나 인접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빈번하게 침략을 받았던 라오스가 수도를 남쪽지방의 비엔티엔으로 옮겨 가면서 루앙 프라방은 정치와 군사적인 요소가 빠진 불교 도시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왕국의 수도가 이전함에 따라 불교도시 루앙 프라방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유지될 수 있었는데, 격동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150개의 사원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작은 도시 루앙 프라방에는 작고 아담한 푸씨(Phousi)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과 메콩 강 사이에는 왕궁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원들이 있다. 왓 아함(Wat Aham), 왓 마노롬(Wat Manorom), 왓 타트 루앙(Wat That Luang), 왓 비수나라트(Wat Wisunarat), 왓 시엥 무안(Wat Xieng Muan) 등 수십 곳에 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원은 왓 시앙 통(Wat Xieng Thong)이다. 이 사원은 1560년에 라오스의 전통건축기법으로 건설되었는데, 벽에는 온통 색유리로 모자이크를 장엄하여 눈부시도록 화려하다.

모자이크는 대부분 경전의 내용과 생활상 등을 묘사하였는데, 너무나 섬세하여 라오스인들의 지극한 장엄의 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본당인 심(Sim) 전각 벽에 조성된 ‘인생의 나무’는 심오하면서도 인생의 지남을 삼게 하는 대표적인 모자이크벽화이다. 또 왕궁의 남쪽에 위치한 왓 마이 수반나푸마캄(Wat Mai Suwannaphumaham)은 그 넓은 벽면을 섬세한 목조각으로 가득 채운 후 개금을 하여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숭고함까지 풍기게 조성하였다.
이렇게 라오스 불자들은 사원을 크게 만들려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것부터 지극 정성으로 장엄하면서 불심을 표현했는데, 그 무엇 하나 수월하게 대충 조성된 곳이 없다.

한 땀 한 땀, 한 칼 한 칼, 큰 욕심 없이 자신의 불심을 나무에 새기고 벽을 장식하면서 라오스인들은 깊은 불심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 색유리로 경전의 내용과 생활상을 묘사한 심 법당의 벽면.
   
▲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팍 오(Pak Ou)사원. 메콩강변의 자연동굴에 천불(千佛)이 안치돼 있다.
   
▲ 심 법당 내부는 온통 금색 모자이크로 장엄돼 있어 빈 공간이 없다.
   
▲ 화려함보다는 종교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왓 마이 수반나푸마캄의 벽면을 장식한 조각들.

혹여 너무 때가 탈까봐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여행지가 있다.

물론 이미 한 달에 5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할 정도로 소문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도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라오스 국립관광청에서 펴낸 관광책자에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The Sleeping Beauty'라고 소개되어 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 메콩 강 유역의 손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경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루앙프라방은 1

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석 같은 곳이다.

1975년 공산국가가 되기 전까지 수차례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루앙프라방은 의연하고 고고하게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와 사연을 싣고 메콩 강은 흐른다

1904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시사방봉 왕을 위해 건설된 왕궁은 이제 국립왕궁박물관이 되어 관람객을 맞는다.

사진 촬영은 물론 메모도 불허하는 엄격한 원칙에 사뭇 높은 자존심이 느껴진다. 이 도시의 이름을 낳은 큰(루앙) 황금불상(프라방)을 만났다.

라오스의 역사만큼이나 불상의 과거도 험난했다. 약탈을 당하는 바람에 인근 여러 나라를 돌다가 겨우 안식을 찾은 '루앙프라방'은

이제 박물관 초입에서 민초를 마주하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긍정의 전설로 존재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시작해 미얀마,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 메콩 강에 몸을 실어본다.

진흙이 떠내려오는 것일 뿐 실은 맑은 물이라는 가이드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란 걸, 사진을 통해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메콩 강물은 그림 같은 정경을 그대로 반사해서 보여주었다. 그렇게 넉넉한 품을 가진 강은 이곳 사람들의 주요 운송 경로이자

식량의 보고이며 아이들의 놀이터, 곧 삶의 터전이다.

시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5km 남짓 상류로 거슬러 가면 팍우(Pak Ou) 동굴이 나온다.

새해가 되면 주민들이 불상을 들고 와 제를 지냈던 곳이다. 무려 4천 개가 넘는 불상이 조용히 메콩 강을 굽어보고 있다.

그 수많은 불상에는 어떤 소원이 담겨 있을까. 숙연함마저 감돈다. 200m 정도 더 올라가면 입구에 배불뚝이 불상이 있는 동굴이 하나 더 나오는데 그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한 수도승이 이 동굴에서 수양을 하고 있는데, 그의 빼어난 외모가 소문이 나 동네 처녀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고 한다. 이에 뚱뚱하고 못생긴 불상을 세워서 처녀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다. 참선을 우선으로 하는 소승불교를 믿는 나라이니만큼 이런 류의 에피소드가 많다.

돌아오는 길, 반상하이라는 마을에 들렀다. 도자기를 굽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가마는 '절대'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지 가이드도 너털웃음을 짓는다. 현재는 술 빚는 마을로 잘 알려졌다. 한쪽에서는 아낙들이 부지런히 베틀을 짜고 있다. "더 예쁜 거 없느냐"라고 묻자 한창 짜고 있던 스카프를 무심한 듯 툭 끊어서 내어주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박제된 민속촌이 아니라 우리 식대로 살아간다는 고집이 느껴진다. 찹쌀로 빚었다는 라오라오주를 한 병 꿰차고 다시 배에 올랐다. 물 흐르는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그런가 메콩 강이 훨씬 친절해진 기분이다. 따갑기만 하던 햇볕도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



1 술을 빚고 공예품을 만들며 살아가는 반상하이 마을 사람들. 2 민초들의 사연을 담은 불상으로 채워진 팍우 동굴에서 내려다보이는 메콩 강. 3 거대한 젖줄 메콩 강은 루앙프라방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해 질 무렵 루앙프라방의 관광객들은 푸시 언덕(Mount Phousi)으로 발길을 돌린다. 328개의 계단을 오르며 거칠어진 숨소리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전망에 그만 멎어버린다. 정상에 자리 잡은 황금 탑을 한 바퀴 도는 발걸음을 따라 루앙프라방의 시내를 360° 돌아볼 수 있다. 메콩 강의 지류인 남칸 강 너머 그림 같은 도시 전경이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메콩 강의 일몰이 장관을 이룬다.

해 질 녘의 루앙프라방을 즐기는 다른 방법도 있다. 크루즈 디너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다소 소박하지만, 운치만큼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메콩 강에서의 저녁식사를 권한다. 한가로이 띄워진 배 위에서 메콩 강에서 잡은 생선을 비롯한 특유의 향신료로 맛을 낸 요리와 라오 맥주로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어 소수 민족의 애환을 담은 민속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전통의상을 갖춰 입고 화장까지 곱게 했지만, 표정만은 꾸밈이 없는 소년·소녀의 노래와 춤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덧 메콩 강은 짙은 어둠에 휩싸인다.



메콩 강으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연인, 어떤 말도 필요 없다.


다시금 메인 스트리트를 찾았다. '이곳이 언제 차들이 활보했던 거리었나?'싶게 야시장이 펼쳐져 있다. 라오스의 49개 부족(2011년 공식 등록된 부족 수) 중 소수 민족에 속하는 몽족이 운영하는 시장은 그림, 스카프, 전등갓, 지갑, 의류 등 현지색이 짙은 공예품이 주를 이룬다. 호객행위를 하는 법도 없고, 흥정을 하자고 들면 '아유, 왜 이러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야시장 구경하는 것이 지칠 무렵 일명 먹자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육류부터 생선을 구워내는 바비큐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오른다. 한쪽에는 볶은 채소, 누들 요리, 샐러드 등이 한 상 차려져 있다. 1만 킵(1달러=8천 킵 수준)이면 한 접시 가득 먹고 싶은 양만큼 골라 담아갈 수 있다. 돌아보니 관광객들은 죄다 이곳에 모인 듯하다. 좁은 골목에 놓인 테이블에 엉덩이 바짝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라오 맥주와 함께 이 밤의 낭만을 만끽하려는 기세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맞는 법

이 지역의 상징이자 현지인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광경이라는 승려들의 탁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섰다. 지나가는 툭툭(오토바이 택시의 일종)을 잡았더니 현지인 아낙이 아침 시장에서 팔 채소와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적지는 인근의 60개가 넘는 사원 중 가장 라오스적인 건축미학으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1560년 건립) 곳으로 알려진 시엥통 사원. "왓(사원이라는 뜻) 시엥통!"을 외치자, 기사 양반이 요금 흥정을 하려든다. 어느 누구도 급할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1 루앙프라방의 하루는 승려들의 탁발 공양으로 시작된다. 2 푸시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루앙프라방 전경. 널리 봐도, 속속들이 보아도 모두 아름답다.

라오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다. 탁발은 출가 수행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 중 하나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사원 경내에 발우(바리때)를 손에 든 승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것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이지만 익숙한 듯 나서는 평온한 표정에서는 어떠한 속내도 읽어낼 수가 없다. 새벽 6시가 가까워오자 한 노파가 사원 마당 한가운데에 광주리와 간이의자를 내려놓는다.

이어 일정 간격을 두고 여인네들이 속속 자리를 잡는다.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수도승들과 같은 맨발이 된다. 하나같이 어깨에 두른 띠는 각별한 예를 갖춘 그네들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듯하다. 잉크색 기운이 가득한 경내를 하나 둘 채우는 주황색 승려복이 몽환적인 기운마저 내뿜는다. 어떠한 종소리나 북소리 같은 신호도 없이 탁발이 시작됐다. 매일같이 치러지는 이 의식은 그들에게 이젠 뼛속까지 스며든 생활인 듯 보인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불상. 어느 순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승려들의 바리때에 조심스럽게 밥을 담는 노파의 입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어느덧 주황색 행렬은 사원을 나서서 거리로 접어든다. 이미 많은 주민이 오른편 인도에 줄을 지어 앉아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반대편 거리에 모여든 관광객들 사이로 밥이나 바나나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들도 눈에 띈다. 공양 체험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마치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는 없지만 무릎을 꿇은 채 공양하는 소녀, 정성껏 찹쌀밥을 손으로 뭉쳐서 건네는 중년 여성, 대열에 합류한 푸른 눈의 관광객들까지 누구 하나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간간이 빈 바구니를 들고 대열에 합류하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승려들의 바리때를 채운 양식은 이내 그들의 바구니를 채우기도 한다. 주고받는 행위에 무엇 하나 거리낌이 없는 모습은 우주의 법칙인 양 숭고하다.
거리를 채웠던 탁발 행렬이 스르르 사라지자 어깨에 뭔가를 짊어진 여성의 무리가 향하는 곳이 있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자 매일 오전 6시부터 열리는 아침 시장에 도착한다. 형형색색 의 채소와 과일, 메콩 강에서 잡아 올린 생선부터 사원에 바칠 꽃, 전통의상, 생활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먹을거리 판매상을 만나기도 하지만, 찹쌀도넛 같은 것을 튀기는 할머니부터 쌀국수를 말아내는 아주머니까지 우리의 재래시장과 참 많이도 닮았다. 새벽부터 바지런하게 물건을 팔고 사려고 나왔지만 누구 하나 욕심이란 없어 뵌다. 팔러 나온 물건도 단출하고 사가는 손도 가볍다.

사진작가인 네덜란드인 남편을 따라 루앙프라방에 정착한 교민 손미자씨 말마따나 라오스 사람들은 절대 게으르지 않다. 다만 노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란다. 딱 먹을 만큼만 벌고 쉬는 것이 높은 행복지수의 비결일까. 2009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68위, 라오스는 19위를 차지했다. 그보다 더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영국 자선구호재단(CAF)의 2010년 세계 기부 조사 결과다. 우리나라는 81위, 라오스는 무려 11위다. 문득 행복에 대해 되짚어본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진정 행복한 걸까.

공식 관광 안내책자에 소개된 언어 표현 중 다섯 번째로 언급될 정도로 라오스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 '보펜양'이다. 우리말로 하면 '괜찮아'. 손미자씨에게 들은 응용편을 인용하자면, 3시에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4시에 나타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좀 늦었지만, 뭐 어때?) 보펜양"라고. 등교 시간이 엄연히 정해져 있음에도 학생이며, 교사며 모두 제각각 등교한단다. 그래도 그들의 일상은 아무 탈 없이 흘러간다.

루앙프라방 거리에서 당최 무엇을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을 보면 열이면 열 한국 사람이라고 손씨는 말했다. 무조건 많이 돌아보고 색다른 걸 먹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체험해야만 하는 관광객 모드인 한국 사람에게 느리게 흘러가는 루앙프라방은 어쩌면 삶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도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진리는 깨닫는 자의 몫이다.



1 팔러 나온 물건도 단출하고, 사가는 손도 가벼운 아침 시장. 2 소수 민족 몽족이 운영하는 야시장. 교민 손미자씨가 꼽은 루앙프라방의 매력 중 하나다. 3 신심이 가득 담긴 사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4 수행을 하면 복이 온다고 믿는 소승불교를 믿는 덕분에 라오스인들은 몸이 아플 때나, 방학 때나 수련을 자청하곤 한다.


루앙프라방은…
1975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 성립되기 전까지 라오스 왕국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제1의 관광도시로 알려졌다. 연간 4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우리나라 관광객은 한 달에 5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유럽풍 카페 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관광도시답게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도 잘 구비되어 있는 편. 우기가 끝나는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둘러보기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루앙프라방은 마냥 정적인 도시는 아니다. 메콩 강 크루즈와 팍우 동굴, 반상하이 마을을 돌아보는 투어 패키지 외에 정글 트레킹, 래프팅, 코끼리 타기 등의 체험을 엮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18홀 골프장도 있다. 건기에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천연 석회암 지형 폭포인 쾅시(Kuang-si) 폭포는 빼놓지 말아야 할 관광지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듯 이어지는 거대한 물길을 따라 울창한 우림을 걷는 기분이 무척이나 청명하다. 우기가 아닐 때는 옥빛 물색을 유지하는 폭포 하류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교민은 30명 정도. 한국영사관 대외협력원을 겸임하는 빅트리카페 & 갤러리(www. bigtreecafe.com) 대표 손미자씨를 찾으면 루앙프라방에 대한 생생한 정보는 물론 맛깔스러운 한식을 맛볼 수 있다. 직항편은 없으며, 베트남항공을 이용해 하노이를 거쳐 닿을 수 있다. 인천→하노이편은 월·목·금·일요일, 하노이→인천, 부산↔하노이편은 매일 운항되며, 하노이↔루앙프라방편은 매일 2회 운항된다(문의: 서울 02-757-8920, 부산 051-465-4828~31, www.vietnamairlines.com). 인접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과 연계한 여행 계획을 짜는 이들도 많다. 라오스의 시간은 우리보다 두 시간이 늦으며, 8천 킵이 1달러 정도에 통용된다. 푸시 언덕, 쾅시 폭포 등 주요 관광지 입장료는 2만 킵 내외. 디너 크루즈는 식사와 공연 관람비 포함해 35~40달러 남짓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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