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France(2025.Mar)

9-2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

봉들레르 2025. 5. 1. 04:11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고 역사적인 광장. 규모 역시 가장 넓다.

중앙에 루이 15세의 청동 기마상이 있어 '루이 15세 광장'으로 이름 붙었으나 대혁명 기간 중 '혁명 광장'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포함한 1,3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세워진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 복고 왕정기에 '루이 16세 광장'으로 잠시 이름이 다시 변했으며, 1830년 이르러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화합과 일치라는 뜻을 가진 '콩코르드(concorde)'광장으로 공식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동서길이 360m, 남북길이 210m.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동쪽은 튈르리 공원에 이어지고

북쪽은 루아얄가(街)를 통해서 마드렌 성당과 마주하며, 서쪽은 샹젤리제 거리와 통하고 남쪽에는 센강에 걸린 콩코르드교(橋)가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은 룩소르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분수와 조상(彫像)이 있다.
18세기에 루이 15세의 명으로 만들어졌으며, A.J.가브리엘이 설계하였다.
중앙에 루이 15세상(像)이 있어 ‘루이 15세 광장’으로 부르다가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5세상이 파괴되고 ‘혁명광장’으로 개칭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000여 명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뒤에 다시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로 개칭되었다.

이집트로부터 선물 받은 23m 높이의 3,200년 된 오벨리스크가 콩코르드 광장의 상징이자 여행객들의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오벨리스크 양쪽에는 두 개의 분수가 자리하고 있으며, 각각 프랑스의 해양 산업과 강의 항해를 상징한다.
북서쪽으로는 샹젤리제 거리, 동남쪽으로는 뛸르히 정원과 바로 이어져 있으며,
에펠탑과 센 강, 마들렌 성당 등의 파리 도심 내 유명 명소들도 조망하기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광장의 정중앙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 오벨리스크(일명 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세워져 있다.

람세스 2세 재위기였던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이다.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신전에 있던 오벨리스크는 2개이며, 두 개 중 하나는 운송상의 어려움으로 이전하지 못한 채 프랑스의 소유로만 남아 있다가

1981926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이집트 정부에 정식으로 반환하였다.

  • 오벨리스크 하단에 금박으로 묘사된 1836년 당시 이송 및 설치 과정
  •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오벨리스크 상부의 모습. 왕좌에 앉은 파라오를 묘사해 놓았다.

  •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

 1833년 12월 21일 파리에 도착한 오벨리스크는 그로부터 3년 뒤인 1836년 10월 25일 프랑스 혁명기에 파괴되었던

루이 15세 기마상의 받침대 위에 올려 세워졌다. 당대 프랑스 공학 기술을 총동원해 이루어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으로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 은 마치 자로 잰 듯 정리된 잔디와 나무들로 가득해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정리된 느낌으로 분수 주변에 불규칙하게 놓인 초록색 의자들이 이 완벽함에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더해준다.
초록색 의자가 아니라 파란색이었다면 주변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초록 정원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초록색 의자는 절묘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