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Poland(2022.Sep)

15-2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Warsaw Holy Cross Church

봉들레르 2022. 12. 19. 21:41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쇼팽(1810∼1849)은 피아노 그 자체로 대변된다.
그 자신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 작품’ 전문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기악을 위한 협주곡이나 성악을 위한 가곡 작품들도 남겼지만 그의 작품 목록에서 피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그의 작품들 성격은 격정적인 리스트의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섬세하고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이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작품 목록에도 불같이 타오르는 격정적인 곡이 있다.
바로 피아노 연습곡 ‘혁명’(Etude Op. 10, No. 12)이다.

1830년,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한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은 2년간의 해외 연주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음악의 변방이었던 폴란드를 벗어나 마침내 음악의 메카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다.
그가 도착했을 때, 빈의 모든 무대는 쇼팽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왜냐하면 한 해 전인 1829년,
빈에서 두 번의 콘서트를 통해 쇼팽은 이미 빈의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호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대작곡가이자 평론가인 슈만(1810∼1856)은 쇼팽을 두고 “모두 모자를 벗어라. 천재가 등장했다”라고 극찬하며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선포하기도 했다.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Holy Cross Church(성 십자가 교회)는 바르샤바 대학교 건너편에 있다.

십자가를 이고 있는 예수의 상

이 조각품에는 Sursum Corda ("당신의 마음을 들어올려라")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

이는 러시아 분할 아래에서 폴란드인의 인내를 상징한다. 

국가 통합을 상징하는 국립 제단

Bolesław Prus 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Aleksander Głowacki 는 폴란드 소설가로,

폴란드 문학과 철학의 역사를 주도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냈다.

전통적 으로 프리데리크 쇼팽이 사망한 10월 17일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에서는 교회에서 엄숙한 미사가 거행되며, 그 동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레퀴엠 은 작곡가의 뜻에 따라 연주되었다. 

쇼팽의 심장이 담긴 항아리가 들어 있는 기둥

쇼팽은 1810년 바르샤바와 가까운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무렵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고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등에 거주했다.

비록 몸은 떠나왔지만 쇼팽은 죽을 때까지 마주르카, 폴로네즈 등 민족성을 담은 음악으로 폴란드 역사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쇼팽(1810~1849)의 무덤에는 그의 심장이 없다.

쇼팽은 죽기 전 “심장만이라도 고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고,

그의 심장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성(聖) 십자가 교회에 묻혔다.
성당의 한기둥에 쇼팽의 심장이 있어 많은 폴란드인들이 지금도 헌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