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Portugal(2015 Feb)

2-2 '테주강의 귀부인'- 리스본 벨렘탑(Torre de Belem)

봉들레르 2015. 3. 2. 14:52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이 탑은 당초 물속에 세워졌으나,

테주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515 ~ 1519년에 건설된 이 탑은 하얀 나비가 물 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로 3층 구조이다.

 

6각형의 보루와 직사각형의 4층탑으로 구성되는 벨렝탑은 리오즈(lioz)라고 부르는 연한 베이지색의 석회석을 사용하여

포르투갈 특유의 후기 고딕의 마누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하부 보루의 난간에는 강 쪽으로 17문의 대포를 거치할 수 있었다.

1층에는 지사의 방(Sala do Governador)으로 불리는 8각형의 방이 수조로 연결되고,

북동쪽과 북서쪽 구석으로는 망루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있다.

2층에 있는 왕의 방(King's Hall)은 강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한쪽 벽만 있는 통로로 연결되며,

구석에 있는 벽난로는 3층에 있는 청중의 방(Sala das Audiencias)으로 연결되었다.

2층은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서 있다.

3층은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고  옛날 왕족의 거실로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16 ~ 17세기의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4층에는 아치형 천장이 있는 교회가 있다.

1580년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패한 다음 벨렝탑은 1830년까지 감옥으로 이용되었는데,

이곳 1층에 갇힌 죄수들은 하루 두 차례 밀물이 들어올 때마다 바닷물에 잠기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하던 독립운동가, 나폴레옹 군에 반항하던 애국자,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이 만조 때에는 물이 들어오고 간조 때에는 물이 빠지는 이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1655년에는 테주강으로 들어오는 배로부터 세금을 받는 세관과 배들이 테주강을 항해할 수 있도록 도항을 지원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16세기 마누엘 1세에 의해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의 위업을 기념해 만든

 타구스 강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목적의 탑이다. 건축 양식은 마누엘 양식이다.

벨렘지구는 포르투갈 전성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벨렘 탑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세운 등대이자 요새였다.

 탐험가들은 여기서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고, 머나먼 항해에서 돌아온 이들은 여기에 내려서 왕을 알현했다.

 

 

 

 

 

2층은 포대로 향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상'이 서 있다. 끝으로 3층에는 귀족들의 연회장이다.

 

1층으로 내려간다.

탑이 만들어진 이후 스페인이 지배하던 때부터 19세기까지 탑의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 탑의 1층은 간조와 만조 때 물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는데,

정치범들을 이 곳에 수용해 고통을 주거나 죽게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화려하고 다이내믹하진 않지만 포르투갈을 찾은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 여행지'라고 말한다.

한적한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미소에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렬한 기억은 없지만 포르투갈의 매력에 서서히 물들어가며 삶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기기 충분하다.

벨렝탑은 포르투갈 국력을 강력하게 한 대항해시대의 상징물로 총 4층으로 이루어진 등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