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Macedonia(2019 Jul)

4-3 호수 남쪽 끝에 나움 수도원

봉들레르 2019. 8. 10. 23:54

 

 

나움 수도원

 

 

 

 

 

 

 

 

 

 

 

 

나움동상

 

나움설명

 

 

 

 

 

 

 

 

오흐리드호수 발원지 안내

 

 

 

나움수도원은 9세기 후반 치유 능력이 있는 성인으로 알려진 세인트 나움이 세운 수도원으로

이곳에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키릴문자 보급에 힘쓴 곳이다.

그래서 정교회 신자들의 순례지이다. 교회 안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수영복으로 가지말고 애완견을 데리고 가지말고

 

1816에 건립

 

 

 

 

 

 

 

 

 

 

공작새가 수도원의 마스코트다.

 

 

 

 

 

 

 

 

 

 

 

 

화려한 자태

 

 

 

 

 

 

 

 

 

단체 관광객들은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

 

 

 

 

 

 

 

 

 

 

 

성 나움' 수도원에 있는 프레스코화.

 

키릴과 메토디 형제, 그리고 그의 제자들

 

 

 

 

 

 

 

 

 

 

 

 

 

 

 

 

 

 

 

 

 

 

 

 

 

 

 

 

 

 

 

 

 

멀리 보이는 곳이 알바니아

 

 

 

 

알바니아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성당 주변

 

 

 

 

 

성당과 붙어있다시피한 레스토랑

 

 

 

 

 

 

인터넷에 드론 사진들

 

 

 

 

 

 

코소보 사태

코소보(Kosovo)는 유고 연방 시기에 세르비아에 속해 있던 자치구였으며,

A.D. 12세기에서 14세기 세르비아 왕국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으며 특히 14세기 중엽 그 번영이 절정에 달했다.

이 당시 코소보는 정교회의 중심이 되어 크게 번성하였다.

오스만 터키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대신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유입되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코소보에 남아 있던 세르비아계 사람들과 알바니아계 사람들 간의 종교적문제는

오스만 터키가 물러간 후에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되었다.

과거부터 이곳을 자신들의 성지(聖地)로 생각하고 있던 세르비아계 사람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두 번의 발칸 전쟁(Balkan War)에 참여했다.

오랫동안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들과 세르비아계 기독교도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던 중

1945년 유고 연방의 대통령 티토는 유고 연방의 세르비아에 속한 코소보의 자치권을 인정하였다.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표명함으로써

많은 세르비아 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세르비아 정부의 통치를 받도록 하자

코소보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이슬람계 알바니아인들이 크게 반발하여 민족적,종교적 갈등을 겪게 되었고,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은 1996년 코소보해방군(KBL)을 조직하여 저항함으로써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