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남해안

2013.10.03 동양의 나폴리 통영

봉들레르 2013. 10. 5. 11:09

 

경남 통영 미륵산(461m) 정상

 

 

 

 

 

다도해란 말이 실감이 난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거제대교가 아닐까?

 

 

 

 

 

하산

 

저녁 5시에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군사(軍史)에서 적전상륙작전의 효시가 된 통영상륙작전은 이후

 해병대가 그 유명한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애칭을 얻는 계기가 된 작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현지에 파견됐던 외신기자들이 부대의 활약상에 놀라며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한 것.

인천상륙작전에 우리 해병이 참가하게 된 것도 통영상륙작전의 성공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다.

6.25때 통영상륙작전이 이루어 졌던 곳

수많은 섬들이 마치 배들처럼 떠 있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를
다시 읽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
차라리 여기에서 흐르는 동서지류가 한려수도는 커니와
남해 전체의 수역을 이룬 것 같다.

정지용의「통영5」에서 일부 발췌 - 문장비

2010년 2월 26일 미륵산 정상 부근 신선대에 충북 옥천 출신이자 현대시문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정지용시인의 문장비가 들어섰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르네상스의 한 시대를 열
었던 ‘한국의 피렌체’ 통영엔 기라성 같은 문예계의 별들이 즐비하지만 구태여 충청도 출신의
시인을 모셔온 것은 통영 예술인들의 열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통영과 인연이 남달랐던 정지용 시인은 8.15해방 후 부산에서 배를 타고 와 청마 유치환 선생
의 안내로 통영을 두루두루 구경하고 6편의 기행문 「통영1~6」을 썼다.
그 중 미륵산 정상에서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그림 같은 통영의 시가지와 푸른 비단을 펼쳐놓
은 것 같은 한려수도를 보고 글로 옮긴「통영5」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
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고 하였다.

정상 부근의 통영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신선대라 불리는 곳에 시인의 문장비가 섰다. 검
은 오석(烏石) 위에 기행문「통영5」와 시인의 약력이 함께 새겨져 있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충북 옥천 출신으로 1939년에는「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
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
경향신문> 주간을 지냈다.

 

 

 

다시 내려갈 준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데도 길게 줄을 섰다.

 

 

 

 

하산

 

통영항이 노을로 물든다.

 

 

 

동피랑 쉼터가 보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삽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부들 

 통영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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