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Laos(2013.Feb.)

5-3 새벽을 깨우는 자비나눔

봉들레르 2013. 3. 4. 14:58

 

 

 

 

 

 

지나 온 길이 길수록 스님의 발우는 묵직해져있었다.

 

너무 많으면 필요한 만큼 남기고 아이들에게 준다.

루앙프라방 스님들의 탁발행렬 뒤에는 바구니를 든 동네 아이들이 있다.

이웃의 가난한 어린이들이다. 스님들은 공양 받은 음식 중 일부를 아이들과 나눈다.

밥과 과일 등은 아이들의 가족이 또 나눠먹게 될 것이다.

 

 

 

짖궂게 꼬마스님의 보시물을 덜어내는 형 스님

 

인적이 뜸한 곳에서 스님들은 발우(불교 승려들이 쓰는 식기)의 양을 가늠해 본다.

 

 

 

 

 

 

 

 

 

 

 

 

루앙프라방에서 단 하루라도 낮과 밤을 보냈다면 유네스코가 왜 루앙프라방을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했는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08년 가 봐야 할 관광지 베스트 53'에서 1위를 차지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여행자들은 대개 루앙프라방의 구도심에 머무른다. 구도심에 있는 세계문화유산들은 현재 시간에도 여전히 유형 유산으로 남아 있다.

여섯시, 사찰에 종이 울리자 스님들이 줄을 지어 나온다. 차가운 도로 위를 맨발로 걸으며 발우를 들고 오는 스님들의 물결이 이어진다.

수행의 깊이를 보여주는 주름진 얼굴의 노스님부터 막 출가한 어린 사미들까지 줄을 지어 발우를 들고 신도들 앞을 지나갔다.

그 때마다 불자들은 찰밥을 떼어 스님의 발우에 넣는다. 어린 사미의 발우에는 초콜릿, 사탕 같은 과자를 올리기도 한다.

많은 양의 음식을 한 스님에게 모두 공양하기보다 조금씩 나눠 여러 스님에게 골고루 공양하는 게 중요하다.

늦게 나온 스님이 빈 발우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에서다.

무릎을 꿇고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에는 경건함이 묻어난다.

날마다 공양을 올리는 라오스 주민들이나, 관광차 이곳을 방문해 탁발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이 순간만큼은

 2600년 전 부처님 계시던 그 때로 돌아간 듯 환희심 가득한 얼굴이다.

 

탁발은 부처님 당시부터 인도의 수행풍토였다. 스님을 가리키는 비구(bhikkhu)라는 말은 걸식하며 수행하는 출가자라는 뜻으로,

스님의 탁발은 일상적이며 승단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과였다.

 

<금강경> 첫 구절에서 부처님께서 공양 때가 돼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 처소로 돌아와 공양했다는 것처럼

부처님도, 부처님 제자들도 오전에 탁발을 해 공양하고, 오후불식을 실천했다.

스님에게 탁발은 단순히 밥을 얻고, 끼니를 해결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수행의 방편이기에 엄격하게 진행됐다.

걸식할 때는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로 해야 하며, 하루 일곱 집까지만 다녀야 된다.

일곱 집을 찾아갔는데도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하루 종일 굶어야 한다. 잘해준다고 한 집에 자주 가서도 안되고, 밥을 달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사미율의>에서는 “남의 집 앞에 가서는 형편을 살펴봐서 위의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자가 없는 집에는 문 안에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여인의 옷이나 이불이나 장식품이 있으면 앉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는 안된다” 등 탁발하는 방법을 규제했다.

이처럼 스님들이 탁발을 통해 하심과 인욕을 배웠다면, 재가자들은 출가사문에게 공양을 올리며 보시의 공덕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