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했던 아르헨티나의 청년 의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했다.
여기서 목도한 식민지 민중의 피폐한 삶은 그를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붉은 별이 박힌 검은 베레모를 쓴 채 시가를 입에 문 체 게바라.
전설 같은 삶을 살다 간 그의 초상은 전 세계 청춘들이 열망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시, 체 게바라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트리니다드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러 산타클라라로 가는 길이다.
산타클라라 시내
휴게소에서 점심
무엇이 이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는가?
즐거운 춤도 있다.
8m의 게바라 동상
혁명영웅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유해가 1997년 10만명 이상의 추모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산타 클라라의 영묘에 안장됐다.
안장식에 참석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전우였던 게바라를
"진정한 공산주의자"이자 혁명 이념의 빛나는 본보기라고 찬사를 보냈다.
안장에 앞서 20분간 행한 연설에서 카스트로 의장은 "게바라는 전세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상징이 되어
어느때보다 더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고있다"고 주장하 고 "제국주의자들은 게바라를 죽임으로써
투쟁도 멈춰지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식적인 구호 "조국이냐 죽음이냐, 사회주의냐 죽음이냐" 대신
게바라의 구호 "승리를 향해 쉬지않고 전진"을 외치며 연설을 끝맺었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 유해가 매장된 직후 쿠바 전역에 걸쳐 민방위대가 사이렌을 울렸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렸다.
또한 아바나港 입구의 카바나 요새에서 군대가 21발의 예포를 발사했으며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천㎞ 떨어진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도 예포가 울렸다.
이어 혁명 영웅들이 이끄는 군사 퍼레이드가 거행됐다.
산타 클라라는 1958년 게바라軍에 의해 "해방"된 곳으로 당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이듬해 1월 축출됐다.
1928년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게바라는 알레르기 전공의 의학도였으나
55년 멕시코에 망명중이던 카스트로를 알게돼 쿠바 혁명에 뛰어들었다.
그는 쿠바의 농업 개혁을 주도했으며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혁명을 지원하기위해 볼리비아로 갔다가 67년8월 볼리비아군에 의해 총살됐다.
그의 유해는 볼리비아의 바예그란데에 매장됐다 지난 7월 12일 쿠바로 돌아왔다.
높이 8m의 게바라 동상이 서있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혁명 광장'에 위치한 면적 1백50㎡의 영묘에는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박물관이 들어서있으며 내부는 특별 살수장치로 언제나 싱싱한 밀림 식물들로 장식돼있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혁명 광장'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야한다. 사진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 때 보았던 것을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이다.
1958년, 젊은 시절의 라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입니다.
쿠바혁명 이듬해인 1960년 3월 5일, 아바나 시내를 행진하는 혁명의 주역들.
맨 왼쪽이 카스트로, 가운데가 체 게바라
박물관을 나와
트리니다드의 숙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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