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경상내륙

1-4 첨성대, 안압지

봉들레르 2016. 11. 7. 15:43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첨성대는 이번 지진으로 기존보다 북측으로 약 2㎝ 기울고 상부 정자석 남동측 모서리(작은 사진 빨간 원)가 약 5㎝ 더 벌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옛 경주 복원도

 

안압지

안압지

674년, 문무왕이 지은 안압지는 아름다운 정원이며, 모든 정원을 한번에 볼 수는 없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부 연못만을 볼 수 있다.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연못 아래에서 수많은 보물을 발견하였으며,

 발견된 보물을 복구되어 현재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안압지 출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