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uba(2015 Jan)

13-3 하바나에서 시엔푸에고스(Cienfuegos)로

봉들레르 2015. 2. 20. 13:23

 

하바나 호텔의 아침

 

 

 

 

 

 

출근길의 쿠바인

시엠푸에고스로 출발

하바나 시내

 

 

 

 

 

 

 

 

 

 

하바나 시내를 빠져나와 교외로

 

휴게소

 

선물용으로 최고인 쿠바시가

윈스턴 처칠(1874~1965)이라면 입에 시가를 지긋이 물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에게 시가를 대주던 런던의 단골 담배가게가 폭격을 받자 가게주인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새벽 2시에 수상관저로 전화를 걸어 그가 즐기는 20㎝ 짜리 쿠바 아바나산 시가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전했다.
처칠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895년 처음 파견된 곳이 쿠바였다.

그는 스페인군과 쿠바 게릴라 전투 현장을 누비며 전황을 미국과 영국 신문에 기고했다.

처칠은 그때 평생 기호품인 쿠바 시가에 빠져들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그곳 원주민들이 엽연초를 둘둘 말아 피우고 있는것을 처음봤다.

‘시가’란 말은 마야 원주민들 말로 ‘담배를 피운다’는 뜻의 시카르(sik’ar)에서 유래됐다. 

그곳 원주민들은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500년 전부터 버섯과 식물에서 얻은 환각제를 엽연초와 함께 말아 피우기도 했다.

어느 탐험가는 “시가를 피우니 취기와 함께 온몸이 나른해 지는것 같았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시가를 갖가지 질환의 해독제나 치료제로 권장됐다.
유럽 국가들 중 시가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랑스와 영국군이 스페인을 처들어 가면서 시가는 다른 유럽국가로 퍼졌다.

미국에서는 18세기 중엽부터 시가를 만들기 시작해 180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시가는 크기가 다양하나 가장 흔한 모양이 어뢰처럼 생긴 ‘아이디얼’로 이를 본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시가는 남근(男根)의 상징일 수도 있다”고 했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아바나 시가는 쿠바의 부엘 타아바호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이 지역은 토질과 바람, 수질, 햇빛 등이 엽연초 재배에 천혜의 지역이다.

특히 아바나 시가는 적당한 상태로 저장해 두면 세계 어디에서든 쿠바의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잘 발효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아바나 시가는 호사가들 사이에 아름다운 처녀들이 넓적다리 맨살에 대고 말아 만든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단교 53년 만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로 쿠바산(産) 시가를 합법적으로 반입할 수 있게 돼 미국 애연가들이 들떠있다.

금연 열풍 속에 쿠바 시가의 위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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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대통령은1962년 2월6일 쿠바와의 무역 중단을 발표하기 몇시간 전에

백악관 공보관인 피에르 샐린저에게 은밀히 쿠바 시가를 구입하도록 지시했다.

 1960년대 쿠바 혁명기에 시가를 문 체 게바라의 흑백 사진

 

 

 

 

 

 드넓은 농지, 연중 최저기온이 섭씨 30도 조금 이하인 쿠바가 식량 80% 수입국이다.

공동생산, 배급제, 농지 개인소유 금지 같은 사회주의적 통치방식 때문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