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프리카 카리브 해의 서부에 위치한 쿠바의 공식 명칭은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이다.
면적은 110,860km로 한반도의 약1/2에 해당한다.
인구는 1129만 명이며 혼혈인 51%, 백인 37%, 흑인 11%, 중국인 1%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는 아바나(Havana)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가톨릭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아열대 기후로서 연평균 기온이 25℃이며 우기는 6~11월이다.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Ruiz)가 국가평의회 의장 겸 각료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게릴라 활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혁명의 본보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화폐단위는 쿠바 페소(CUP)로 시장 환율을 따지면 1US$가 21페소 정도 된다.
쿠바의 음악은 맘보, 볼레로, 살사, 차차차 등의 모태가 되었다.
수많은 유명인이 즐겨 온 쿠바산 시가는 세계적인 품질로 손꼽히며,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칵테일의 명성도 대단하다.헤밍웨이 앞에 놓인 칵테일 한 잔
1939년 쿠바에 정착한 헤밍웨이는 1960년 아이다호로 떠날 때까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노인과 바다> 등 20세기 문학사를 대표하는 명작들을 집필했다.
밤이면 아바나 시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대저택에서 50마리나 되는 고양이와 동거했던 헤밍웨이는
술에 취한 날이면 아바나 거리를 맨발로 걷곤 했다.
카리브 해의 돈키호테였던 그는 문단에서는 언어의 사냥꾼이라 칭송받았지만
젊었을 땐 아프리카 대륙을 휩쓸며 맹수들 사냥에 탐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육십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고혈압, 당뇨, 불면증, 신경쇠약, 망상증,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게 되고,
쿠바를 떠난 다음해인 1961년 7월, 스스로 머리에 엽총을 쏘고 만다.
61세에 파란만장했던 평생의 모험이 그렇게 끝난 것이다.
호세 마르티 광장 뒤로 가서 차도를 건너면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던 ‘엘 플로리디타’란 바가 오른쪽에 보인다.
사실 쿠바는 칵테일의 천국이다.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인 하바나 클럽으로 쿠바 바텐더들이 제조할 수 있는 칵테일만도 무려 100여 가지나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쿠바리브레, 다이 퀴리, 모히토다.‘쿠바리브레’란 럼주에 라임과 콜라를 배합해서 만든 것이다.
이곳 플로리디타에서 믹싱한 것이 제일 맛있다고 소문난 칵테일이 ‘다이 퀴리’다.
그리고 박하향이 나는 약초인 예르바 부에나와 럼, 라임주스, 소다수, 설탕, 얼음을 넣어 조합해서 만든 것이 ‘모히토’다.
모히토는 쿠바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칵테일이지만, 쿠바를 너무나 사랑해서 오랫동안 하바나에 머물며 집필 생활을 한
헤밍웨이는 다이퀴리와 모히토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스탠드 왼쪽엔 생전의 헤밍웨이가 즐겨 앉았던 구석 자리에 그의 전신 조각을 실물 크기의 청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왼팔을 스탠드에 기댄 채 홀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의 조각 앞엔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이 퀴리 한잔이 놓여 있다.
조각 작품 뒤로는 카스트로, 게리 쿠퍼, 스펜서 트레이스 등과 함께 찍은 흑백 사진들이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온 사람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대문호 헤밍웨이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며 술을 마셨을까?
그리고 누구와 어떤 얘기들을 나눴을까?약국 근처에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있다.
이 호텔 511호실에서 그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가 집필됐다.
그때는 헤밍웨이가 아직 쿠바에 정착하기 전이어서 아바나에 집이 없었던 시절이다.
책을 출간 했을 때 헤밍웨이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1943년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되어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영화로 여운을 남겼다.
‘노인’은 아직도 그 바닷가에 있을까
한적한 어촌 코이마르. 바로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코이마르엔 헤밍웨이의 흉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운반하다가 결국 상어에게 빼앗기고 마는 쿠바의 늙은 어부 이야기로
1954년 노벨 문학상을 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헤밍웨이 자신도 그 어촌에서 청새치를 낚곤 했다.
코이마르엔 배가 한척도 보이질 않는다. 모두 먼 바다로 나가 버렸나. 가끔 파도치는 소리를 제외하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
코이마르에서 145킬로미터쯤 더 가면 미국 본토가 나온다.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가 거기 있다.
코이마르는 슬픈 역사의 출발지기도 하다.
코아마르에서 플로리다를 향해 많은 쿠바인들이 나무 상자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해류에 의지해 목숨을 건 항해를 했다.
그 유명한 보트피플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보트피플의 절반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 작가 헤밍웨이 어니스트과 유능한 종군 기자이자 세번째 부인이었던 마사 겔혼과의 불꽃 같은 사랑 이야기.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로맨스 중 하나인 문학의 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아름답고 모험심 강한 작가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종군 기자 마사 겔혼의 열정적인 사랑과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을 재현해 냈다.
역사에 증인으로서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분쟁을 보도하지만 정작 그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은 그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미 떠나버린 사랑을 잡으려고 싸우는 것은 사라진 도시가 남긴 폐허 속에서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헤밍웨이 사후 50주년인 지금 저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헤밍웨이 관련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 헤밍웨이의 작품이나 자서전이 아닌 그의 첫번째 아내 해들리의 시선으로 헤밍웨이와의 만남과 결혼생활, 헤어짐,
그리고 짧은 후일담을 그려낸 히스토리컬 픽션이 있어 읽어보았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라는 제목의 책이다.
주인공인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은 헤밍웨이의 첫번째 부인이다.
헤밍웨이는 이후에도 3번의 결혼을 더 하게 되는데, 다른 부인들이 전부 지식있고, 세련된 신여성이었던데 반해서,
이 해들리는 예술가나 지식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무명 시절의 헤밍웨이와 결혼한 여성이기도 하다.
일명 스타터 와이프다. 해들리와의 결혼생활 중에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하면서 일약 유명인사로 발돋움한다.
소설은 주로 해들리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고 가끔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들어간다.
둘이 부부로 지낸 기간은 1921년부터 1927년까지로,
결혼과 동시에 해들리는 무명 저널리스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던 헤밍웨이와 파리로 건너간다.
재즈 시대의 파리. 여기서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피츠제럴드, 피카소등의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소설을 쓴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빠듯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해들리는 헤밍웨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친구로서 마음을 열고 지내던 저널리스트 폴리와 남편 헤밍웨이의 불륜을 알게 된다.
헤밍웨이는 해들리와의 이혼 4개월 후, 폴리와 재혼한다.
해들리는 올곧고 착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막내딸로 태어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보살피는 동안 노처녀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8살 연하의 헤밍웨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는 대단히 핸섬하고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의외로 한참 연상인 해들리를 사랑하게 된 것은 헤밍웨이는 헤밍웨이대로,
자신의 재능을 믿고 지지해 주는 성숙한 여성에게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파리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당당한 헤밍웨이의 옆에 시골에서 막 올라온 큰 누님처럼 익숙하지 않은 해들리가 있어서 조금 안타깝다.
헤밍웨이는, 훗날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후회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쓸쓸한 말로는 조강지처를 버린 탓일까?
만약 이 이야기가 논픽션이라면,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해들리는 대단히 좋은 여성이고, 남편을 믿고 지지함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기분도 잘 이해 할 수 있지만,
역시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성격이나 돌발적인 면이 있는 인물로 그려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읽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쿠바 키웨스트에서 낚싯배를 모는 바다 사나이 해리 모건. 그는 여름이면 낚시꾼을 배에 싣고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번다.
여름 한 철 번 돈으로 1년 동안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어느 날 수고비를 모두 떼이는 사기를 당한다.
결국 생계를 위해 거절해왔던 밀수업에 손을 댔다가 총에 맞아 한 팔과 배까지 모두 잃는데….
“내 집에서 행복을 누릴 기회가 다시 있을까? 어째서 난 출발점보다 더 못한 곳으로 돌아왔을까?”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국내 초역 소설.
헤밍웨이가 1934년 단편소설과 1936년 후속편으로 발표한 중편소설을 1937년 한데 묶은 책이다.
소설은 시나리오로 각색돼 4번이나 영화화됐다.
1944년 당시 최고의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 해리를 맡아 화제가 됐다. 당시 상대역이 훗날 보가트와 결혼한 로런 바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