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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개의 오아시스 국가였던,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봉들레르 2010. 9. 25. 18:52

천개의 오아시스 국가였던,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27-1) 속디아나(Sogdiana)의 대문, 테르무즈(Termuz)
「왕오천축국전」은 이제 서역에서는 한 지방의 기록만을 남겨두고 있다. 혜초사문이 ‘호국(胡國)’이라며 모두 합쳐서 기록했던 바로 그 ‘6개국’이다.
『또 대식국의 동쪽은 모두 호국이니 곧 안국(安國), 조국(曹國), 사국(史國), 석라국(石?國), 미국(米國), 강국(康國)이다. 각 나라에는 비록 왕이 있으나 모두 대식국의 통치하에 있다. 나라들이 협소하여 병마가 많지 않아 스스로 지킬 수 없다.(중략) 또 이 여섯 나라는 모두 배화교(拜火敎)를 섬기며 불법을 알지 못한다. 다만 강국에 절 하나와 승려 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도 또한 불법을 잘 몰라 공경할 줄 모른다. …』


*마란쟌 출토 불상


‘호국6국’을 차례로 열거하면,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Bukhara), 카부단(Kabudhan) 키시시(Kishsh), 우즈벡의 타슈켄트(Tashkent), 타지키스탄의 펜지켄트(Penjikent), 우즈벡의 사마르칸드(Samrqand)이다. 현 우즈벡공화국에 3곳이 몰려 있는 셈이다. 이 6개 호국은 예의 ‘시문구’적 공식이나 문맥상으로 보면 ‘전문국’ 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물론 다른 곳은 이의가 있을 리 없으나, 다만 강국(康國)인 사마르칸트와 그 다음에 나오는 페르가나국(跋賀那國)과 쿠탈국(骨?國)을 전문국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함이 뒤 따른다. 왜냐하면 마치 직접 가본 것처럼, -『여섯 나라는 모두 배화교를 섬기며 불법은 알지 못한다. 다만 강국에 절 하나와 승려 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도 또한 불법을 잘 몰라 공경할 줄 모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다가, 더구나 바로 뒤이은 페르가나국(Ferghana)를 설명하면서,『또 강국으로부터 조금 동쪽은 곧 페르가 나국이다.…』, 라고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강국과 미국(米國) 그리고 쿠탈국(骨?國)은 지척 간으로 이 두 나라는 모두 작은 나라인 타지키스탄의 펜지켄트(Penjikent)와 쿠탈(Khuttal)이기에 혜초가 강국에서 바로 이웃나라인 페르가나로, 다시 쿠탈로, 다시 이름 없는 투르크계 나라를 지나갔을 가능성이 많다는 문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 대한 기술은 그냥 주워들은 풍문으로는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속디아나의 여왕상

『또 강국으로 부터 조금 동쪽은 페르가나국이다. 이 나라에는 왕이 두 사람이 있다. 시르다르야[縛叉大河 Syr Darya]강이 나라의 중앙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강 남쪽에 한 왕이 있어 대식국에 속해 있고, 강
북쪽에 한 왕이 있어 돌궐에 속해 통제를 받고 있다.』

다음으로 나오는 쿠탈국의 묘사 역시 직접 가본 듯 세세하다.
『또 이 페르가나국의 동쪽에는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쿠탈국(骨?國)이다. 이 나라 왕은 본래 돌궐의 종족이고 백성의 반은 호족이고 반은 돌궐족이다. (중략) 언어는 주민의 절반은 토하라 말을 하고 절반은 돌궐 말을 하고 절반은 본토의 말을 한다. 왕과 수령과 백성들은 삼보를 공경하고 신봉하여 절도 있고 승려도 있다. 』



만약 혜초가 호국을 직접 답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혜초는 왜 이런 나라들을 마치 전문국처럼 한꺼번에 묶어서 ‘호국’으로 기록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를 ‘이하동문(以下同文)’이나 ‘계륵(鷄肋)’ 같은 고사에서 연상되는 상징적인 해법이나 또는 연역법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혜초의 관심사는 이미 노출된 대로 어느 나라에 삼보(三寶)가 얼마큼 성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불교가 이미 쇠퇴된 서역 제국에서는 불교관계 이외에는 대동소이한 내용이어서 특별히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구나 순례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렇기에 직접 가보았기에 초안은 작성해 두었으되 마지막 정리과정에서 ‘이하동문’으로 묶어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은 불교가 남아 있는 나라만 독립적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아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뒤집어서 반문하면 이렇다. 혜초가 만약 호국들을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왜 관심사가 아닌 기타 내용
들만 있는 여러 나라에 똑 같은 내용으로 기록했겠느냐? 는 것이다.

                 
                   *속디아나인

‘해동의 나그네’도 같은 심정이 될 때가 가끔 있다. 만약 어떤 여행기를 쓴다고 치고, 그 때 쓰다보니 원고가 초과되었다면, 총 원고분량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할 수없이 비중이 가벼운 곳을 빼거나 줄일 수밖에 없다. 그 때마다 그곳에서의 고생담이 떠올라 한편의 꼭지라도 간단히 잘라버리기가 쉽지 않아 최대한 줄여서 최소한도로 기록에 남겨두게 될 때도 있다. 아마도 혜초사문도 그랬을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혜초가 정말 이들 호국6국에 갔었느냐 하는 문제의 열쇠는 그 현장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해동의 나그네’도 무리하게 아프간에서 아무다리아를 도강하여 속디아나의 땅인 우즈베키스탄으로 입국하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해동의 나그네’는 우정이란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말았다. 당시, 우즈벡의 비자도 미리 받았고 초청장과 호텔의 ‘바우쳐’까지 해놓았기에, 더구나 아프간의 출국수속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아무다리아를 건너 우즈벡으로 입국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우즈벡 국경에서 입국을 거절당하였다. 그 다리는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지여행이라면 산전수전 다 격은 나그네라도 어쩔 수 없는 상항이었다. 다행이 델리에서 우즈벡의 타슈켄트로의 왕복티켓이 있었기에 급히 날짜에 맞추느라 서둘러서 델리로, 다시 타슈켄트에 날아와서, 다시 669km를 남으로 달려와서 아무다리아 건너에 있는 국경도시 테르무즈까지 허겁지겁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놈의 다리‘ 하나 때문에 몇 만리를 돌아서 온 셈이다.



테르무즈는 아늑하고 조용했다.

*아무다리아

아무다리아 강 사이로 역사의 격랑의 땅 아프간과 마주보고 있었지만 국경도시로서의 긴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강변 쪽으로 경계초소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정도 외에는 별 위기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며칠 전에 지나쳤던, 아프간 쪽 하이다탈 마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곳에 ‘아무다리아 모스트’가 걸려 있었다. ‘모스트’란 다리를 뜻하는 말이다. 내게는 통한의 대상이었던 카이버고개를 넘어 의기양양하게 입성한 카불고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혼자서도 온갖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출국 시에 문제없을 줄 알았던 그 모스트에서 졸지에 발목이 잡힐 줄이야.


그 다리 아래로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푸른 강물이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을 보기 위해서 몇 만리나 돌고 돌아서 달려온 나그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아나히타 여신이 속삭이듯 위로를 해주었다.

“나그네여! 천여 년 만에, 또 다시, 먼 해동에서 찾아 온 외로운 나그네여!

그대는 비록 ‘아무다리아 모스트’를 걸어서 넘어오지는 못했어도, 어쨌든 나의 품속으로 들어 왔으니, 그러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다리아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으로, 무려 한반도의 두 배나 되는[2,540km] 길이이다. 중앙아시아의 강들의 특징은 모두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 강 또한 마찬가지로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빙하천이 모천이 되어 속디아나의 대지를 적시며 서북쪽으로 흘러내려 내륙의 바다인 아랄(Aral)해로 들어간다. 이 강은 하류의 카라쿰, 키질쿰 같은 사막을 제외한 전체 길이의 절반 이상의 강변에 비옥한 퇴적토를 쌓아놓아 강 양안(兩岸)에 사는 수많은 뭇 중생들의 모천으로, 또한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권을 융합한 다양한 문화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카라테페에서 바라 본 화야즈테페


그러나 뜻밖에도 이름만큼은 그리 모성적이지 않다. ‘아무’는 페르시아어로 광기(狂氣), ‘다리야’는 강이기에, 합치면 바로 ‘미친 강’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해동의 나그네’도 이 강의 이름이 아마도 날개달린 아나히타 여신과 관련된 그리스풍의 우아한 이름일 것이라고 상상했다가, 그 뜻을 확인 한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할 정도였다. 그렇게 오래 그리워했던 강이 고작 ‘미친 강’이었다니… 아마도 홍수 때의 모습에서 그 이름이 명명된 것 같으나 오늘 만큼은 뭇 중생들의 어머니 강처럼 조용하고 인자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라는 곳 없지만, 갈 곳 많은 나그네는 낯선 곳에 도착하면 우선 하루 밤을 지낼 숙소를 잡는 일이 급선무였다.

*테르무즈 고분속의 부자상

이 나라는 얼마 전까지도 공산권에 속했던 나라여서 그런지 ‘딱딱한 요소’가 많아 비자 받는 일부터 시작하여 교통, 숙박, 언어 등의 문제가 그리 자유롭지 못하단 정보를 들었는지라, 더구나 때가 한 겨울인지라, 하루 밤의 잠자리 해결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잠자리를 해결해 놓고는 간단한 차림으로 박트리아 시대의 구도시와 당시의 사원유지를 찾아 나섰다. 시내에서 북서쪽 근교에 있는 2세기 쿠샨왕조 시대의 석굴사원인 카라테페(Kara Tepe), 즉 카라 언덕과 좀더 북쪽으로 2km 떨어진 석굴사원인 화야즈테페(Fayaz Tepe)였는데, 역시 2천년이란 세월과 강물의 퇴적으로 인해 유적지는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어서 땅에 나와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흙벽돌의 성벽 잔해와 길 가에 나뒹구는 수많은 토기 파편 정도였다. 그나마 화야즈 언덕은 카라테페에서 빤히 바라다보였지만, 레이더 기지가 있는 군사경계지역 안쪽이어서 가까이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단지 안내를 자청한 사람이 말하기를 거기서 출토된 큰 불상이 시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그곳을 가보라는 것이었다.


                                                   *테르무즈 유적지


정말 박물관에는 그 지방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역시 테르무즈는 천개의 오아시스 도시국가가 있었다는 속디아나의 관문에 걸맞게 찬란한 헬레니즘의 전초기지 노릇을 하였던 것이 분명하였다. 거대한 간다라 스타일 불상을 비롯하여 그리스적인 것과 중국적인 것이 융합된 고도의 문화를 이룩했던 흔적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 한바 있지만, 속디아나는 북쪽의 시르다리아 강과 남쪽의 아무다리아 강 사이의 드넓은 옥토를 지칭한다. 다른 말로는 서구에서는 ‘트랜스 옥시아나’, 즉 “옥수스 강의 저편의 땅”이라고도 부르고, 아랍권에서는 ‘무와란’ 이라고 부른다. 예부터 실크로드의 중간 중계지 역할로 번영을 이루었던 곳이다. 강력한 통일국가라기보다는 강가를 따라 늘어선 비옥한 오아시스를 낀 수많은 도시국가 연합의 형태였다. 전성기에는 천개의 크고 작은 도시가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동서가 서로 왕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이곳의 원주민, 즉 '소그디안(Sogdian)들은 막대한 중개이윤을 독차지하였다. 이들의 이름은 당시 로마나 중국 모두에서 상술의 달인들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당회요(唐會要)」기록에는 이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강국인은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꿀을 먹이고 아교를 손 안에 쥐어준다. 그것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 입으로는 항상 감언을 놀리며 아교가 물건에 붙듯이 손에 돈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염원이다. 그들은 장사를 잘하며 적은 이윤이라도 다툰다. 남자는 20세가 되면 다른 나라에 보내는데, 중국에도 온다. 그들은 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간다. 』

이런 강국인의 고향 사마르칸트는 자연히 동서양의 중간 하치장이 되어서 동서양의 특산물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무다리아는 흐르는 금광이라 할 정도로 황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강물 속에 양털을 하루만 집어넣었다 건져서 햇빛에 말려서 빗으면 황금이 한 움큼 씩 떨어진다는 환상적인 유언비어가 생길 정도였다. 이른바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였다.


황금을 돌처럼 보는 사람 어디 있으랴 는 듯, 눈독을 들이는 나라가 생겨나게 된 것은 당연한 일. 먼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서 초석을 닦은 아케메네스왕조가 트랜스옥시아나의 황금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 왕조를 연 키루스(Cyrus)는 수차례 대군을 보내어 아무 강 유역의 박트리아, 속디아나, 콰리즘을 차례로 정복하여 영토를 넓혀가며 대제국으로서의 기반을 이룩했다. 그 뒤 다리우스(Darius)1세 때에는 서투르케스탄 전체가 완전히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비시툰(Bisitun)의 비문에도 제국의 영토가 열거되는데-『이 지역은 우리들에게 분봉된 나라들이다. 불의 신 ‘아후라마즈다’의 의지에 따라 나는 이들의 왕이 되었도다. (중략) 콰리즘, 박트리아, 속디아나, 간다라, 사카의 23개국이다.』- 라고 씌어 있어 서투르케스탄 일대가 대왕의 지배 하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페르시아 치하의 중앙아시아는 대제국의 질서정연한 체제 밑에서 도로와 통신이 정비되어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이루었다. 당시 속디아나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마라칸다(Maracanda), 즉 현재의 사마르칸트는, 성벽의 주위가 30km나 되는 거대한 성곽도시로 가장 두드러졌다. 이 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찬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케메네스왕조 치하의 속디아나의 번영과 평화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3세를 암살한 뱃수스를 추격하여 박트리아로 추격해 왔을 때 이 페르시아의 반역자는 아타크세르크세스 4세(ArtaxerxesⅣ)라고 자칭하며 박트리아의 제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페르시아에 시달려왔던 박트리아와 트랜스옥시아나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연합하여 치마 입은 그리스군대에게 대항하지만, 그러나 그 역시 부하의 배신으로 사로잡히는 몸이 되어 대왕 앞으로 압송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자주독립을 위한 속디아나의 저항은 그 후로도 3년간이나 계속되어 갈길 급한 그리스 원정군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때, 마치 아름다운 전설 같은 한 사건을 만들어서 운명의 여신은 그리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기야 모든 역사는 승자의 편이었을 테니까…. 그것은 바로 대왕과 록사나의 로맨스이다. 그녀는 옥시아르테스라는 왕국의 공주였는데, 그녀의 성채는 특별히 견고하여 난공불락이었기에 천하의 알렉산드로스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수차례 회유를 하였지만, 그 때마다 옥수스 강의 수호여신인 ‘아나히타’처럼 날개 있는 자에게만 항복하겠다는, 무슨 수수께끼 같은 답신을 전해왔다. 이에 대왕은 몇날며칠을 생각하다가 델피(Delphic) 신전의 도움으로, 성채의 앞산 위에서 날개달린 연(鳶)에 사람을 태워 성안으로 들여보내는 작전을 구상하였다.


*테르무스 박물관


이에 성문이 저절로 열리고 성주 옥시아르테스가 보검을 바치며 약속대로 항복을 하였다. 대왕은 그 보검으로 성주의 목을 치는 대신 아름다운 그의 딸 록사나 공주와 함께 빵을 자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법에는 남녀가 함께 빵을 자르는 행위는 결혼의 서약이란 의미였다. 정복자가 원주민 여인과 결혼을 하는 정략적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자주 쓰는 고전적 수법이었던지, 당시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3세의 딸 스타테이라와도 결혼식을 올려 페르시아의 민심을 얻어서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하는 이상적인 오리엔트 제국의 건설을 꿈꾸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알렉산드로스의 원대한 꿈은 비록 자신은 거두지 못했지만 그가 교통의 요충지 곳곳에 건설한 6개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도시들의 네트워크(Network)를 거점으로 그의 후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페르시아에 의해 시도되었던 파미르고원 서쪽세계의 일원화가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현장법사는 천축으로 가기 위해 철문(鐵門)을 통과하여 테르무즈에서 아무 강을 건너서 발흐로 내려갔다. 현장은 이 곳을 탄밀국이라 불렀다.

『 테르무즈국(坦密國)은 동서 6백여 리, 남북4백여 리이다. 도성은 주위 20여리인데, 동서는 길고 남북은 좁다. 가람은 10여 군데이고 승려는 천여 명 정도이다. 스투파와 불상에서 신비한 영적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출처 :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
글쓴이 : 수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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