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 그림
암브로조 로렌체티 Madonna and Child
우골리노 디 네리오 성모와 아기 예수
Lorenzo Monaco, Madonna of Humility
La Vierge et l'Enfant. Giovanni da Modena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의 초상
Sigismondo Pandolfo Malatesta의 초상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Piero della Francesca (c. 1451)의 작품이다.
콘도티에로 이자 리미니 의 영주이자 파노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 Fano Sigismondo Pandolfo Malatesta)를 묘사하고 있으며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에 소장되어 있다..
초상화는 용병 대장의 옆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일부 출처에 따르면 1445년 피사넬로 가 만든 메달이나
1450년 마테오 데 파스티가 만든 메달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자체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리미니에 머무는 동안 그린 것으로 여겨지며, 그동안 그는 도시의 템피오 말라테스티아노 대성당에서
성 지기 스무트 뒤에 무릎을 꿇은 지기스몬도 판돌포를 그린 프레스코화도 그렸다.
저명한 인물들의 초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측면 표현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인물의 질감과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있어 자연주의적 디테일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는 로 흐르 반 데르 바이덴과 같은 플랑드르의 거장들에 대한 그의 깊은 지식을 보여준다..
안드레아 만테냐, 골고다의 언덕
안드레아 만테냐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고, 환영적인 원근법에 뛰어나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성 제노 제단화'의 그림 아래에 작게 위치한 '골고다 언덕'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곳이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 기둥 위의 예수
기둥 위의 그리스도 (Pillory)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1476년에서 1478년경 에 제작한작은 그림으로 ,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말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안토넬로가 초기 네덜란드와 베네치아의 영향을 성숙한 예술로 융합시킨 과정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작품의 크기가 작고 클로즈업된 모습 때문에 이 작품이 원래는 낮게 잘려 있었고,
원래는 난간이 예수와 감시자들을 분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이론은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안토넬로의 예술에서 공통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고문이 시작되기 직전인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묘사함으로써
안토넬로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감정적 충격을 얻는 데 성공했다.
평소처럼 안토넬로는 세부 묘사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수염(모든 머리카락을 구별할 수 있음),
이빨과 혀가 보이는 반쯤 벌린 입, 얼굴에 나타난 첫 번째 핏줄, 완벽하게 투명한 물방울.
Antonello da Messina (1430-1479), Ritratto d'uomo (Il condottiero)
남자의 초상화,, 또는 콘도티에로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 은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베니스에 머물던 동안인 14751475년에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651865년에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콘도티에로"라는, 거만한 표정, 윗입술의 흉터 때문에 붙여졌지만 모델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검은색 배경에 남자의 얼굴이 매우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고, 그의 옷과 모자 역시 검은색이다.
얼굴 생김새는 짙은 갈색 눈, 곧은 코, 뚜렷한 광대뼈, 튀어나온 입술이 특징이며, 강한 의지가 담긴 표정 속에 뛰어난 심리적 침투 능력을 갖추고 있다.
Antonello da Messina (1430-1479), Ritratto d'uomo (Il condottiero)
관객이 밀리는 것을 보니 모나리자가 가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호두나무에 그린 성 르네상스 유화다. 1513년에서 1516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빈치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명암법을 사용하여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고립된 채 묘사하고 있으며 , 마치 그림자가 드리운 배경에서 마치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성 요한은 모피 옷을 입고 긴 곱슬머리를 하고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왼손에 갈대 십자가를 들고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벌링턴 하우스 만화에 나오는 성녀 안 나와 유사하다.
프랭크 죌너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은 "그림의 종교적 내용을 전달"하며,
"부드러운 그림자가 대상의 피부톤에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을 불어넣어 거의 중성적인 효과를 낸다"라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1483~1486년 사이에 완성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개인의뢰를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625년부터 프랑스 왕실 소유였던 기록이 남아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 작품으로
앞의 아이 두 명 중 누가 예수고 누가 세례자 요한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으나,
성모 마리아의 시선이나 천사 우리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왼쪽 아이가 아기 예수인 것 같으나,
아래 그림을 보면 왼쪽 아이가 세례자 요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이런 점등을 명확히 하여 다시 그린 그림이 현재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그림이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1495~1508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88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구입하여 소장하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과 유사하며 위에 언급된 점등을 수정하여 누가 예수이고 누가 세례자 요한인지 명확하게 나타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모 마리아와 성 안나
성모 마리아와 성 안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1년 경에서 1519년 경에 그린 미완성 유화다.
성 안나와 그녀의 딸인 성모 마리아 , 그리고 아기 예수를 묘사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제지하려 하자 예수는 수난을 상징하는 희생양과 씨름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은 피렌체의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의 제단화로 의뢰되었으며, 이 그림의 주제는 오랫동안 레오나르도가 고심해 온 주제였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즐겁고 차분하면서도 혼란스럽다.
세 인물의 구도는 상당히 탄탄하며,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와 분명히 소통하고 있다.
그들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리아가 성 안나의 무릎에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그 자세를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른 예술 작품에서는 이러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으며,
서로의 무릎에 앉아 있는 여성들은 관람객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문화적, 전통적 기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성모 마리아와 성 안나의 정확한 크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그림을 통해 성 안나가 마리아보다 훨씬 더 큰 사람임을 유추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성 안나의 나이가 더 많다는 시각적 단서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묘하지만 눈에 띄는 크기 왜곡을 활용하여 두 여성 사이의 모녀 관계를 강조했다.
아기 예수는 어린양을 품고 있다. 또한 마리아는 아기 예수의 눈을 응시하고 있고, 성 안나는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가 무릎에 앉아 있고 성 안나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 레오나르도는 두 사람의 관계와 성격에 대한 요점을 밝히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요아킴과 안나는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였다. 요아킴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갔으나 아이가 없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라고 여겨져 성전에서 쫓겨나 목동들과 함께 광야로 가서 몇날 며칠을 기도로 지내다가 마침내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예언을 듣게 되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성전에 갔던 남편이 감감무소식이니 아내는 가슴 졸이며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남편이 없는 동안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던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임을 예고하였고, 또한 예루살렘 성의 황금 문에 가면 남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단걸음에 안나는 예루살렘 성으로 갔고 부부는 얼싸안고 해후했다. 이렇게 해서 안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늙은 나이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성모 마리아다.
성 안나에 관한 이 전설은 곧바로 그림으로 그려졌다. 천사가 성 안나에게 나타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장면, 예루살렘 성의 황금 문에서 부부가 포옹하며 기쁨의 재회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성 안나가 성모 마리아를 출산하는 장면 등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도 성 안나를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를 함께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중앙에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여인이 성 안나다. 딸인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는데 양의 등을 타고 놀려는 아기 예수를 양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고 있다. 여기서 양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될 희생 제물의 상징일 것이다. 자식의 고통은 어떻게든 막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성모 마리아 역시 아들의 험난한 운명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다빈치는 이 그림에서 바로 이런 어머니의 인간적인 심정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성 안나는 그저 딸과 손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림의 구도는 삼각형 모양이다. 성 안나의 머리를 정점으로 하여 삼각형의 오른편은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그리고 어린 양의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도 덕분에 성 안나는 자신보다 등치가 큰 딸을 무릎에 앉혀 두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결코 순탄치 못할 아기의 운명을 예고하려는 듯, 아름다운 초원이 아니라 척박한 바위 산이다. 그림의 배경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 물안개가 자욱한 풍경이다.
독자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왠지 부드럽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빈치가 발명한 수푸마토라는 회화 기법 덕분인데 이는 사람이든 풍경이든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고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기법으로서 인물이 보다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다빈치 이후 모든 화가들이 즉각 이 기법을 전수받은 것으로 보아 이 방식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혁신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빈치는 같은 주제를 그린 대형 스케치를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성당에서 며칠간 전시해 놓았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인파가 마치 거룩한 축제에 참석하듯이 줄을 지어 가서 다빈치의 스케치 그림을 감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빈치는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한 화가로 대접 받고 있지만 이미 당대에 가장 존경받고 칭송받았던 예술가였다.
카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