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으로
숙소 출발 7:50
숙소 건물 내 스타벅스
엘리베이터 입구 출입문
숙소 건물 출입문
숙소 건물
상젤리제 거리
그랑 팔레 박물관은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등재된 아트뮤지엄이다.
그랑 팔레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 외곽 바스티유 감옥이 분노한 시민들의 습격을 받아 함락됐다.
습격을 유발한 건 요새를 개조한 바스티유 감옥의 높은 벽에 설치된 대포였다.
민중의 눈에는 대포를 비롯해 견고한 석조건물과 거대한 성채가 위협과 공포로 비쳤을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는 프랑스왕정(ancien regime)의 상징이었다.
민중에 의한 바스티유 감옥 함락이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감옥의 문이 열렸을 때 죄수는 7명뿐이었다.
그것도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같은 경범죄자들이었다.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린 민중의 분출하는 에너지는 멈출 줄 몰랐다.
그들은 루이 15세 광장(지금의 콩코르드 광장)으로 향했다. 결국 루이 15세의 동상과 조각물들은 성난 민중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역사의 현장인 바스티유 감옥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다만 지하철 바스티유역 지하층에 당시 감옥의 초석이 남아 있고 바스티유 광장 주변에 감옥이 있었다는 푯말이 설치돼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바스티유 광장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한가운데에 52m 높이의 ‘7월 혁명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 꼭대기에는 뒤몽이 조각한 ‘자유의 수호신’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기념비 원기둥에는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탑 아래에는 두 혁명의 희생자 504명 유골이 안치돼 있다.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후 41년 동안 프랑스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계속 혁명을 요구했으며, 혁명은 항상 피를 불렀다.
프랑스대혁명의 진원지답게 지금도 파리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주로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작해 콩코르드 광장으로 향한다.
호텔 드 라 마린
1836년 이집트 정부에서 선물한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오벨리스크 상형문자, 받침대 정면에 쓰여진 라틴문자.
25m,300톤을 옮기기 위해 900명의 인부와 말140여마리와
47대의 권선기(철선과 밧줄로 감거나 푸는 기계)가 동원되어 콩코드 광장에 옮기는 과정이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에서 개선문까지는 일직선이다.
바다의 분수(Fontaine Maritime)
파리인들은 산책하기를 참 좋아한다.
샹젤리제 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샹젤리제 거리 위쪽으로는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 볼거리 많은 편집샵, 상점 등이 많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콩코르드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나무와 꽃밭이 잘 꾸며져 있다. 낮에도 예쁘고 밤에도 예쁜 샹젤리제 거리다.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